지난 8일 포스코홀딩스 차기 회장에 내정된 장인화 전 포스코 사장에 대해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비토(거부권) 행사 기한인 22일을 앞두고 그의 자질과 이력이 막판 검증의 쟁점이 되고 있다.
▲차기 포스코 리더십과 무난함
포스코홀딩스 CEO후보추천위원회(의장 박희재 서울대 교수, 후추위)가 설 연휴 직전인 8일 쫓기듯 강행, 장인화 전 사장을 낙점해 발표하자 그룹 안팎의 한결같은 평가는 '무난한 장사장'으로 요약됐다.
그와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33년 재직 기간 동안 특별한 오점을 남기지 않고, 주변과 원만한 관계를 형성해온 미덕의 바탕은 유복한 집안 출신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인사발표 후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이 그의 고모라는 사실에 이어 탈북용사 조창호 소위가 외삼촌이라는 보도까지 이어지면서 가족관계가 그의 이력이나 역량보다 더 화제가 됐다.
포스코 전·현직 임원들에 따르면 장사장의 안정적 경제기반은 소위 '주인이 없는 회사'의 CEO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된다.
16일 한 전직 임원은 "포스코 내에서는 그동안 회장이 흙수저보다는 금수저 집안 출신이 더 낫다는 얘기가 있었다"면서 "2018년 회장 선임에 개입한 정부 인사가 '국민정서 상 포스코 수장은 흙수저가 맞다'면서 최정우 편을 들었는데 그간의 사태를 돌이켜보면 내부의 판단이 맞았음을 증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포스코에 닥친 위기를 돌파해야 할 차기 CEO의 덕목이 장사장의 '캐릭터'에 있다는 데 회의적인 입장도 적지 않다.
최근 동종 업계에서 퇴직한 한 포스코 출신 임원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봤지만 장사장은 특별히 지적할 문제가 없는 게 장점"이라며 "하지만 그런 무난함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하다"는 뼈 있는 평가를 했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장 전 사장의 회장직이 확정되면 공·사 이해관계에서 특별한 리스크 우려는 없지만, 지난 6년여간 최회장 재임기간을 포함해 그룹 안팎에 산적한 과제를 해결할 역량은 미지수라는 것.
특히 이구택 회장 체제 이후 포스코그룹에 각종 이권 카르텔이 공고화되고, 최근 해외 호화판 이사회 등 사외이사들의 일탈 수준의 권한행사, 임직원의 기강 이완, 지난해 확인된 불안한 노사관계 등 차기 CEO에게는 험난한 가시밭길이 예고된다.
한 현직 임원은 "회장 후보에 대한 금수저, 흙수저 잣대는 단순한 시대착오가 아니라 의미심장한 포스코의 가치가 있다"면서 "투명성도, 도덕성도 땅에 떨어진 후추위가 쫓기듯 뽑은 후보라는 점에서 최회장이 잘못 구축한 '앙시앵 레짐'(구체계)을 개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영 역량·정치 편향 이력도 검증 시험대
지난 2018년 7월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둔 권오준 회장이 출범 14개월이던 문재인 대통령 재직 당시 제9대 최정우 회장으로 교체됐다. 권 회장의 낙마 배경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 당시 동향 후배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이 연루된 '이스포츠재단' 기금출연 혐의 등이었다.
당시 전혀 의외였던 최 회장의 발탁은 취임 이후 자신의 동래고·부산대 선후배가 중심이 된 이른바 '부산파'의 후광을 업고 문재인 정부와 특별한 관계로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최인호 민주당 의원(부산 사하갑), 김성진 사외이사(전 해양수산부 장관), 변양균 대통령 경제고문 등의 유착설이 줄곧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공채 후배인 최회장의 그늘에서 3년 동안 장인화 사장은 특유의 무난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회장 후보 선임으로 인해 그를 둘러싼 내밀한 의혹들이 최근 다시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8년 8월 최회장의 취임 이후 시작된 포항지역사회와의 갈등의 뿌리는 권오준 회장 체제인 그해 4월 2일로 거슬러간다.
이날 장 사장은 이강덕 포항시장과 '4차산업혁명 등 산업구조 개편에 대비한 미래 신성장산업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상호 신의성실 이행'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날 체결식을 불과 나흘 앞둔 3월 29일, 포스코와 서울시는 서울숲 핵심 부지에 5천억원 규모 ‘과학관’을 건립해 사회공헌에 기부채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포스코는 당시 포항시민들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자 3일 뒤 장 사장을 포항으로 내려보내 양해각서 체결로 급한 불을 끄게 했지만 6년여째인 아직까지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무리한 서울숲 5천억 기부 해프닝은 정권에 밉보인 권 회장이 여당 시장인 서울시와 관계를 개선해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서울 경기고 동기가 바로 장인화 사장이었으며, 당시 그가 나서서 기부 프로젝트를 주도했음이 이번 회장 내정을 계기로 다시 들춰지고 있다.
'최정우 퇴출! 포스코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강창호, 범대위)는 15일 '포항시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최정우 밑에서 연명하기 위해 지난 정권 실세의 줄을 잡았던 장인화는 회장 후보에서 물러나라'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4월 2일 MOU를 체결한 포스코는 8월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포항과 갈등의 정점을 거듭했다. 특히 2022년 1월 출범한 포스코홀딩스 본사를 서울에 두고, 지난해에는 포항에 명목상의 본원을 둔 채 2조원 규모의 미래기술연구원 분원을 성남 위례지구에 건립하는 계약까지 맺었다.
범대위가 즉각 비판에 나섰지만 다급해진 포스코가 오는 22일 예정된 착공식을 14일 전격 취소한 데는 장인화 사장의 회장 취임을 위해 지역사회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계산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회장의 3연임 저지에 이어 장 회장 내정에도 반대하고 나선 범대위는 '그가 최회장 아래에서 무난한 조연에 머물지 않고 정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며 폭로하고 나섰다.
범대위는 15일 회견을 통해 '(장 내정자가)권 회장의 지원을 받고도 정권을 등에 업은 최정우에게 밀려났고, 이때부터 (문재인)정권 외곽의 막강 실세로 알려져 있던 성직자 S씨의 줄도 잡고 후배 밑에서 연명하며 백두산 초호화 이사회(2019년 8월)에도 동참했다'고 주장하며 사진을 공개했다.
장 전 사장의 경영 능력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다.
1조3천억원이 투자된 합성천연가스(SNG) 공장을 240억원에 매각해 포스코그룹 사상 역대급 손실에다 아르헨티나 광산 투자 실패의 책임자이며, 포스코의 불명예 사고인 강릉 마그네슘 제련공장의 페놀 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자라는 것이다. 특히 그에게 포스코 직원들이 붙인 ‘마이너스의 손’이라는 평가에서도 마이너스 경영이 불 보듯 뻔하다는 지적도 있다.
▲장인화 포스코홀딩스 회장은 가능할까?
포스코홀딩스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를 발동할 수 있다. 임시이사회가 지난 8일 장 전 사장을 선임한 지 15일 기한인 오는 22일까지 국민연금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장인화 회장 선임을 낙관하는 측은 국민연금이 상대적으로 '로컬'(국내)로 분류되는 KT와 달리 글로벌 기업인 포스코홀딩스에도 같은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다.
특히 미국증시에 상장된 포스코홀딩스의 국제적 신인도를 고려할 때 KT처럼 이사회의 회장 선임 결과를 뒤집고 추천위원회까지 해체해 새 회장을 선임케 하기는 무리라는 것이다.
반면 범대위를 비롯해 '이미 도덕성과 신뢰도가 바닥인 후추위가 최 회장의 후계 세습을 위해 선택한 하수인에 불과한 만큼 국민연금이 적극 개입할 당위성이 충분하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국민연금의 개입을 위한 법적 뒷받침도 있다. 지난해 4월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는 민주당 이정근 전 사무부총장 뇌물 수수 재판 선고에서 주목할 만한 판례가 됐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공단의 주무기관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7.25%)인 만큼 국민연금공단 외에 포스코홀딩스에 대하여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또는 그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써 대통령실은 포스코홀딩스 및 그 계열사에 대하여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대한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이 2023년 10월 11일 원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했고, 2023년 12월 28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원심과 항소심의 판결이 하나의 완결된 판례로서 확립됐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19일 입장을 내고 KT 사례처럼 후추위 해체, 신임 사외이사 선임, 주주총회 연기 등 정부의 강력한 개입의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범대위 측의 고발로 수사에 나선 서울경찰청도 같은날 피고발인 16명 가운데 일부를 우선 소환 조사할 예정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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