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역대 비서진 모임에 초대받은 황경로 2대 회장(가운데)의 모습. <사진 제공= 비서진 모임>
고 박태준 포항제철 창업 회장과 함께 창립 요원으로서 세계 굴지 철강기업의 반열에 올린 황경로 제2대 회장이 12일 오후 향년 96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13일 박 명예회장의 14주기를 하루 앞 둬 대한민국 산업화에 발자취를 남긴 두 사람의 인연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이날 포스코홀딩스와 창업임원들의 모임인 중우회에 따르면 황 전 회장은 오후 1시 18분께 별세했으며 회사장으로 오는 14일 오전 11시 발인 예정으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다.
평전 '세계 최고의 철강인, 박태준' 등 자료에 따르면 황경로 전 회장보다 3살이 더 많은 박태준 명예회장과의 인연은 약관 24세 이던 지난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당시 포항 형산강전투 등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던 박태준 중령은 육군대학 수석 졸업 후 육사 교무처장으로 부임해 장옥자 여사와 결혼했으며, 후배 장교 황경로와도 처음 만났다.
박태준 전 회장은 1964년 12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요청으로 준비하던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대한중석 사장으로 발령됐다. 60년대 초반 당시 중석(텅스텐)은 한국의 연간 총수출액 3천만 달러 중 500~600만 달러를 벌어들일 만큼 주요 수출품이었다.
하지만 정치권과 경영진의 방만한 조직 운영에다 부패 구조로 인해 비리 사건이 빈발하고 부실경영이 심각한 상태였다.
1965년 박태준은 사장 취임 뒤 경영 혁신을 위해 인재들을 물색하던 중 부하였던 황경로를 영입했다. 당시 황 중령은 미국 육군경리학교에 유학한 경리회계 부문 전문장교였으나 과감히 군복을 벗고 대한중석의 과장에 임명됐다.
박 사장의 리더십과 당대 최고 전문가들의 선진 경영 기법이 맞물려 경영이 흑자의 정상궤도에 오른 1967년 대한중석에는 종합제철 실무팀이 구성돼 황경로 관리부장이 팀장을 맡고 있었다.
1968년 4월 1일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가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창립식을 열어 박태준 초대 사장이 취임하고 고준식, 황경로, 노중열, 안병화, 장경환 등 대한중석의 주역들이 창업요원을 맡았다.
황 전 회장은 박 명예회장과 함께 부침도 함께 했다. 신군부의 강권으로 박 전 회장이 정치에 입문한 뒤 1990년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의 3당 합당 이후 1992년 정치적 시련기에 내몰리자 황 전 회장은 제2대 회장에 취임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의 석연 찮은 세무조사 등 비리 연루 의혹을 받자 황 전 회장은 6개월만에 회장직을 사임하고, 박득표·이대공·유상부 등 소위 'TJ파'는 퇴임과 전방위 사정의 모진 시련을 맞았다.
박태준 명예회장의 역대 비서진 모임의 한 인사는 12일 "올해 초에 새해 인사를 겸해서 비서진들이 초대해서 함께 한 점심이 고인과의 마지막이 됐다"면서 "포스코의 창업 원로들이 이제 몇분 남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의 철강과 산업화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미래에도 씨앗처럼 싹을 틔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