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가 호주 시드니공항 입국 직후 공항경찰의 조사를 받고 사건이 종결된 뒤 일행 및 여행사 가이드(가운데)와 함께 호주 여행에 나선 모습. <사진 제공= 제보자>

국내 대기업의 부장급 직원 5명이 퇴직을 기념해 해외여행에 나섰다가 기내에서 비상문을 조작했다는 시비 끝에 예약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해 뉴질랜드에서 발이 묶인 사실이 드러났다.

황모(60)씨는 서울의 모 기업 입사동기 4명과 함께 내년초 퇴직을 앞두고 지난 4일부터 오는 13일까지 열흘 간의 일정으로 호주와 뉴질랜드 남·북섬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황씨 일행은 각자 33년~38년간 재직한 회사에서 퇴직하는 섭섭함을 마치 한가족처럼 지내며 쌓은 동기 간의 정으로 달랠 겸 이날 인천공항에 모였으나 비행기 이륙 7시간여만에 해외여행의 설레임은 악몽으로 변했다.

지난 10일 뉴스포레에 취재 요청을 해온 황씨에 따르면 4일 오후 7시 무렵 이륙한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다음날 새벽 2시께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 순간 황씨는 비행기가 난기류에 빠진 듯 흔들리자 중심을 잃은 채 바로 옆 비상문의 손잡이에 손이 닿고 말았다. 비행기의 진동으로 인한 단순한 실수이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 황씨와 달리 승무원들은 얼마 뒤 "기장실에 이상 센서 신호가 감지돼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며 책임을 추궁했다.

황씨 일행은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한 뒤 게이트에 미리 대기 중이던 현지 경찰 2명에게 인도돼 조사를 받았으며 여객기 사무장, 대한항공 총괄 매니저 등 회사 측도 입회해 진술을 했다.

결국 조사는 "고의적인 비상문 조작이 아니라 기체 흔들림에 의한 상황 발생"이라는 황씨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종결 처리됐으며 일행은 아무런 걱정 없이 다시 여행에 나설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닷새 뒤 뉴질랜드 남섬에서 북섬으로 이동해 점심 무렵이 됐을 때 현지 가이드는 "대한항공으로 부터 여행사에 '예약한 귀국 항공기의 탑승이 거절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급해진 이들 일행은 국내 지인은 물론 항공사 소관 부처인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실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답변조차 돌아오지 않았다며 막막함을 호소했다.

황씨 일행은 대한항공과 여행 상품을 판매한 모두투어로 부터도 부당한 대우와 횡포를 당하고 있다며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본지 취재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실 등 관계기관이 경위 파악에 나서자 12일 한 간부가 전화를 걸어와 '호기심에서 비상문 레버를 만졌으며 이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술서 제출을 요구했다는 것.

또 모두투어도 12일 오후(한국 시간)에 들어서자 입장이 돌변해 국내의 담당직원이 "'회사 지시로 모든 업무 협조를 할 수 없다'고 털어놓은 뒤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한항공 측은 이날 "해당 승객은 비상구 문을 들어 올렸으며, 승무원의 제지 및 경고에 '장난으로 그랬다'는 등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향후 재발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면서 "이는 중대 항공보안법 위반이므로 피의사실 고지 및 현지 경찰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항공안전을 위해 국제운송약관에 의거 (해당 승객에 대해)향후 당사 항공편 탑승거절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황씨는 "당시 비상문 레버와 접촉한 사실을 화장실 주변 좌석을 비롯해 승객 누구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면서 "호주 경찰 조사가 종결로 처리된 데는 입회한 대한항공 직원들도 더 이상 이의 제기를 안 했기 때문"이라고 재반박했다.

모두투어 관계자는 "회사 상부의 지침이 내려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탑승 거절의 사유로 인해 타 항공사를 이용할 경우 국제법 상 그 회사에 고지할 의무가 있어서 오히려 추가 제재가 가해 질 수 있음을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황씨는 "비상문 레버 접촉 뒤 기내 소동이 있었다는 등 대부분의 얘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이번에 같은 투어팀에서 우연히 만난 부부 4명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면서 "부당한 대우와 허위 사실 공표, 인권 침해 등에 대한 책임 규명과 법적 조치를 귀국 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