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칼럼]선거가 다시 포항을 속일지라도...

포항 유권자 거물 정치인 대신 무소속 후보 선택 '결기'
지진 원인 왜곡·'몰포항' 최정우 비호 국회의원은 '결격'
'국힘'중앙당 지역 여론 외면 공천에 '시민의힘' 맞서야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승인 2024.02.28 10:58 | 최종 수정 2024.03.18 23:38 의견 0
임재현 발행인

오는 4월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항에서도 여야의 후보 공천 여론조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성년에 유권자가 된 이후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 서서 그동안 직접 겪고 알았던 포항의 총선과 국회의원을 생각해봤다. 고향에서 선거의 첫 경험은 강렬했다. 무소속 돌풍을 일으킨 허화평 의원 때문이었다.

고교선배인 그의 당선은 '5공의 설계자'라는 별칭이 상징하듯 개인적 역량이 주효했지만, 그 바탕에는 변화에 대한 포항시민의 열망이 있었다. 당시 상황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세장에는 포철 임직원과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빈틈 없이 개입했다. 경찰과 각종 기관도 얽히고 설킨 관권선거였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허화평 의원 시절 포항은 포철과의 오랜 비대칭적 관계를 웬만큼 교정할 수 있었다.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을 마다하고 무소속 후보를 선택한 포항시민들의 결기는 아직도 선거철이 돌아올 때마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그와 전후한 포항 남·북 국회의원들도 한국 정치사에서 기록될만한 영욕의 정점을 오가며 시민들에게 기대와 실망을 안겼다. 공을 따지자면 지역 출신 대통령의 도움으로 철도와 도로, 항만, 국가산단 등 굵직한 SOC 확보 성과가 가장 크다. 하지만 공이 7이 아니라 9쯤 되더라도 깡그리 0이 되게 한 것은 비리라는 과때문이었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친형인 국회의원으로서 '영일대군'으로까지 불린 이상득의원의 몰락은 야당은 물론 전국이 시샘하듯 주시하던 상황에서 도시 위상과 시민의 자존심도 같이 침몰시켰다. 거물 의원과 시민 정치의식의 동반 공백기를 틈타 뱃지를 훔친, 서울의 잘 나가던 방송인사는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음란 시정잡배였다. 그야말로 영일만친구의 도시 포항은 '검사외전'이라는 흥행영화조차 소돔과 고모라의 소굴인양 실명을 들어 무대로 설정할만큼 전국적 비웃음꺼리가 됐다.

포항 북구는 거물 허화평·이병석 의원의 뒤를 김정재 의원이 이어받았다. 고교동기인 후원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했다는 검찰 수사에 이병석 의원은 모함을 주장하며 맞서려고 했다. 검찰을 앞세운 박근혜 정권은 삭막한 철강도시에 소프트한 리더십으로 은총을 베풀기라도 할 것처럼 ‘여성우선공천지역’으로 포항 북구를 지정해 김 후보를 지명했다. 무릎이 꿇린 이의원은 결국 공천결과를 공개 수용하는 수모를 감내했지만 구속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벌써 8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포항시민들은 김정재 의원의 3선 도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동안 보수여당은 ‘보수의 텃밭’이라며 대구경북을 추켜세워 왔을 뿐 마치 ‘잡아놓은 고기’ 대하듯, 남의 묘 벌초하듯, 선량을 고르고 골라 공천으로 은혜를 갚겠다는 최소한의 염치조차 보이지 않았었다. 기억하는 포항의 역대 총선에서 이번처럼 중앙당에 대고 현직 의원의 공천 배제와 비리 척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중앙당이 지역의 민심에 등 돌린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유권자는 그저 지켜보는 신세라는 것이다.

김 의원의 지난 8년 동안 시민들은 지열발전소의 촉발지진과 포스코 회장 최정우의 ‘몰포항 경영’이라는 양대 재앙에 시달려왔다. 이들 사건은 각각 무관하지 않을뿐더러 현직 의원과는 특히 더 그러하다. 포스코는 지열발전소 사업의 컨소시엄 기업이므로 포항시민에게 가해자이다. 지진의 진원지 포항 북구 김정재 의원은 오늘까지도 포스코에 사과도 보상도 요구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연지진이라며 흥해주민을 윽박질렀다. 포스코홀딩스의 설립을 앞둔 2022년 1월 서울 본사 항의 방문에 나선 포항시장 면전에 “왜 민간기업의 경영에 시장이 개입하느냐”며 공박할만큼 최정우를 비호한 당사자이다. 지방선거에서 ‘쪼개기후원’ 혐의 시의원을 공천하고 회유하기 위해 불법모금을 통해 변호사비를 대납했으며 “조폭 출신” 사무국장과 함께 당원협의회를 농단했다는 공개적인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포스코 지주사 본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포항개발자문위원연합회를 비롯한 포항시민의 전례 없는 국회의원 공천 반대운동은 한국의 정치현실 앞에서 또 다시 무릎 꿇릴 공산이 크다. 중앙정치가 눈 감고 밀실에서 거래하며 방치하는 사이 지방정치의 위기에 가죽이 벗겨지는 피해자는 바로 시민들이다. 선거를 앞두고도 유권자가 신문기사 한줄 읽지 않는다고, 선거가 또 다시 공천을 미명으로 유권자를 속인다고 슬퍼하거나 노하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하루 아침에 당한 유발지진의 피해를 안고 있다면, 명사십리 자연과 맑은 공기를 호흡할 권리를 희생하며 포스코의 신화를 도운 포항시민이라면 자각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법이 지켜주지 않듯이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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