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남구 동해면 주민들이 장기 방치된 도시개발사업 부지에 최근 매립된 오염 폐기물과 제선충 피해목 파쇄 소음 등 환경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편 파쇄 현장 200여m 너머가 초계기 추락 지점이다. <뉴스포레 사진>

#1 "수십년 동안 군용기 소음·사고 위험을 참고 살았는데 결국엔 마을 근처 200m 거리에 추락·폭발 참사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포항 남·북구에서 오염된 폐기물까지 모아와서 땅속에다 파묻으니 우리는 버림 받은 시민입니까?"(이장 이상철 씨·74)

#2 "억새밭이 아름다웠던 앞산이 20년 이상 방치된 도시개발사업으로 민둥산이 돼버렸습니다. 매일 집 위로 이륙하는 비행 소음도 싫었지만 고생하는 조종사들을 위해 자주 손을 흔들어줬는데 참사에다 오염토까지 쌓여가니 트라우마입니다."(주민 신말선씨·64)

지난 5월 29일 오후 1시 50분 무렵 마을 부근 신정리 야산에 추락한 해군 P-3CK 초계기 폭발 사고 현장을 목격한 포항시 남구 동해면 약전1리 주민들.

생생한 사투리로 전해진 당시의 긴박감은 방송사들의 실시간 중계로 전국에 방영됐지만, 사고 발생 1개월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5월 중순 이후 자신에게 닥친 환경피해는 호소할 곳을 못 찾아 냉가슴만 앓고 있다.

'약전 이씨' 집성촌으로 잘 알려진 이 마을은 주민 250여명 가운데 철강공단 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다세대 주택을 제외하면 야산 쪽에 위치한 촌락에는 주로 80대 노년층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최근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 마을 뒷산에 대형덤프트럭들이 하루 수십여대씩 드나들며 "색깔도, 냄새도 다른" 흙더미를 실어와 매립하기 시작한 시점은 초계기 사고가 일어나기 보름 전쯤인 5월 중순 이후.

지난 1일 약전1리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상철 이장은 "아무런 통보도 없이 25t트럭 30여대가 아침 7시부터 하루 10여 차례씩 마을을 지나 도시개발사업 부지로 토사를 매립하기 시작했다"면서 "현장에 올라가 확인해보니 색깔도, 냄새도 다른 오염토들이 4군데로 나눠져 투기돼 있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재선충 고사목을 파쇄하는 중장비와 굴삭기가 작업 중인 현장 옆에 쌓아 놓은 여러 종류의 흙더미 곳곳 토양에는 썩은 생선 비린내와 함께 간장처럼 짙은 액체들이 굳은 채 배어 있었다.

약전1리 마을 옆 도시개발지구 현장에 투기된 오염토. <뉴스포레 사진>

주민들에 따르면 매립이 시작된 직후 비가 내리자 짙은 갈색의 침출수가 흘러 나왔으며, 결국 5월말 포항시에 민원을 접수했지만 본지 취재가 시작되고 나서야 토사 반입이 중단된 상태다.

마을이장과 관련 업계에 대한 취재 결과, 문제의 오염토는 북구 장성동 옛 '캠프리비' 부지에 컨벤션을 조성하는 '포엑스' 사업, 죽도어시장 복개천 침하 복구, 남구의 섬안큰다리 옆 등 각종 공사 현장에서 반출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들 사업 현장은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여러 차례 환경오염 논란을 겪어온 터라 반출 토사의 사토장을 주민 거주지 인근에 아무런 협의 없이 조성한 데 대한 논란은 예견돼 왔다.

특히 이 가운데 '캠프리비' 부지는 한국환경관리공단의 미군 주둔지 오염토 정화사업을 거친 곳이다. 하지만 최근 '포엑스' 공사 과정에서 벙커-C유에 의한 추가 오염 현장이 발견돼 감리단장이 나서서 대책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났다.

죽도어시장 복개천 배출구 침하 복구 현장과 섬안큰다리 인근 공사 현장도 모두 포항의 대표적 수질 및 토양 환경 취약 지역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업계 관련자들에 따르면 25t 덤프의 적재량과 반출지점들에서 매립지 간 거리와 운송 횟수 등을 감안하면 총 12만~10만㎥로 추산된다.

냄새와 색깔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토양 옆에 침출수가 말라 붙은 채 굳어 있다. <뉴스포레 사진>

주민들이 겪어온 소음 피해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원우(78)씨는 "포항 곳곳에서 옮겨진 재선충 고사목들을 파쇄하는 소음에 오랫동안 시달려왔다"면서 "오염토 매립이 시작된 후에는 적재함을 '탕탕' 털어내는 덤프트럭들의 굉음에 공장 야간 근무 후 오전에 잠을 자야 하는 주민들이 괴로워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현장을 둘러본 포항시의회 최광열(57)의원은 "지역구가 위치한 섬안큰다리 부근 토사가 인접지역에 반입돼 피해가 있다는 주민들의 연락을 받고 나왔다"면서 "정확한 경위를 파악한 뒤 해당 지역구 시의원 및 포항시와 대책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포항환경운동연합도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현재 사토장 사진 자료 등을 파악한 뒤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이상철 이장은 "수십년간 항공기 소음에 시달려온 주민들에게 돌아온 결과가 포항 남북구에서 모아온 오염물인 현실에서 더 이상 인내할 수는 없다"면서 "청림, 인덕 등 인근 주민과 함께 군 탄약고 이전 요구 등 본격 행동에 나서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