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이 청와대 본관에서 임명장 수여식 시작을 기다리며 조국 민정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12·3 계엄 사태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25일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종결한다.

비상계엄 3개월이 다가오는 지금 국민의 상당수는 탄핵에 찬성하지만, 탄핵 반대 집회의 열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어, 탄핵이 인용된다면 만에 하나라도 폭동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존재하기에 탄핵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당연히 준수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왜 12월 3일 순진하리만치 무계획적이고 어린아이 장난 같은 계엄을 선포했을까? 재판과정에서 나오는 사실들을 보면 ‘친위쿠데타’에 가깝다. 그런데 이 ‘친위쿠데타’를 함께한 동지들을 보면 자신의 소임과 책무도 모르고 있었고, 명분도 당위성도 이해하지 못한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로 남을만하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윤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오히려 끊임 없이 권력에 반항하는 게릴라 스타일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윤석열의 삶은 반항의 인생이다. 그것도 최고 권력자에 대한 항거자이다.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이준석 당 대표와 투쟁해서 승리했다. 그리고 마지막 권력인 국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강한 권력과 투쟁해서 이겨야 하는 검투사였다.

윤 대통령을 보면 체 게바라가 떠 오른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의사라는 직분을 포기한 채 1960년대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등에 업고 남미에서 만연했던 쿠데타 정부를 타도하자며 자유를 위한 전쟁에 뛰어든 혁명가 체 게바라. 그는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에 성공해서는 다시 권력 서열 2위 자리를 박차고 나와 볼리비아의 숲속에서 게릴라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그는 살아 생전보다 사후에 전 세계적으로 '체 게바라 열풍'을 불러일으켜 권력에 저항하는 반항아의 아이콘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9수 만에 사법고시에 합격할 정도로 무모할만큼 우직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에서 배제된 뒤 국정감사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국민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는 자기를 좌천시켰던 박 대통령을 구속하고, 검찰총장으로 발탁해준 문재인 대통령과 맞짱을 뜨며 불의에 맞서 정의를 지키는 공정한 사람으로 국민들에게 각인되었다.

특히 검찰총장을 지휘할 권한을 가진 조국과 추미애, 두 사람과의 충돌은 윤석열이 대권주자로 떠오르게 하는 최고의 계기였다. 국민들은 실상은 내부 권력 투쟁의 일단인지도 모른 채 거대 권력에 대항하는 듯한 윤 총장에 박수를 보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거기에서 멈춰야 했다. 그랬다면 역사는 권력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법과 원칙을 지킨 21세기 대한민국 공직자의 귀감으로 그를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의 권력에 대한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과정부터 당 대표였던 이준석과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당 대선후보로 선출되고 난 뒤부터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준석 대표를 쫓아내기까지 윤석열이 싸웠던 권력자는 국민의힘 당원과 국민들이 선출한 이준석이었다.

윤석열은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상관들의 국정원 댓글 사건 개입에 대해 “위법한 지휘·감독은 따를 필요가 없다. 누가 봐도 위법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그에 이의제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어떻게 따르냐”며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다고 했다. 이렇게 말했던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기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그냥 상남자로서 김건희 여사 문제를 비롯해 상식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일삼는다.

국민들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을 바로잡고 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소박한 바람때문이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서 반항하고 무너뜨려야 할 대상은 한 줌도 되지 않는 권력을 쥐고 있던 이준석과 의사협회, 그리고 여의도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이 아니었다. 바로 윤석열을 쥐락펴락하는 김건희 여사와 '철밥통'이 돼 ‘포지티브 규제’로 무사안일한 '늘공' 공무원 조직에 저항하고 투쟁했어야 했다.

논어 '선진편'에 "공자는 ‘정도로써 임금을 섬기다가 임금이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가는 사람을 '대신'(大臣)이라 하고, 임금의 명령에 따라 사무를 집행하고 봉록만 타먹으며 머리 숫자만 채우는 사람을 '구신'(具臣)’"이라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대통령실과 행정부를 오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한평생 승진만을 위해 상관의 심기만 살피는 '구신'으로만 채웠다. 그 결과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민심을 전달하지 못하는 늘공들이 세월만 보내고 눈치만 살피며 대통령에 아부만 하다보니 12·3 사태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가져온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그렇게도 증오했고 무시하고자 했던 여의도 정치와 여의도 정치 낭인들이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4차산업혁명의 기틀을 놓았다는 것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다. 고시 출신의 공무원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조직이나 문화도 획일화되면 안 되며, 발전 가능성도 없다. 이종교배와 혼성 속에서 새로운 종이 싹튼다. 역대 보수정권 대통령실을 보면 최소한 어공과 늘공의 비중이 5대5 내지, 6대4 비율은 되었다. 선거를 도와준 충신이라서 논공행상으로 기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재야에서 풍찬노숙해가며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온 경륜을 인정해 준 것이다.

12월 3일로 되돌아가서,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도 늘공이 아니라 어공들과 계획을 했다면 100%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며, 만에 하나 감행했다면 반드시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어공들은 여의도 정가를 손바닥 보듯이 들여다볼 정도로 디테일을 알고 있으며, 산전수전 겪으면서 쌓아온 경륜의 뒷받침이 있기에 목숨을 걸고라도 행하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고 행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통치자가 아니라 끊임 없이 권력에 반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이다. 그가 통치자였다면 자신보다도 더 정치를 모르는 관료와 언론 출신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할리 없었다. 또 권력의 반을 좌우하는 총선을 앞두고 의사협회와 전쟁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고, 대통령을 만들어준 선거공신들을 여의도를 좀먹는 양아치쯤으로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연명은 '귀거래사'에서 ‘지나간 것은 되돌릴 수 없으나, 다가올 일은 대처할 수 있다'(往者不諫 來者可追, 왕자불간 내자가추)’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에서 국회 권력과의 투쟁에서 패배한 반항아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을 다시 혹한의 길거리로 나서게 만든 이번 경험을 딛고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권한과 함께 여의도 권력에 대한 견제 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건우·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