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제6차 전당대회가 청주 오스코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김건우 기자)

우리나라의 정당사를 보면,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소수정당이 약진한 시기가 가끔 있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화로 6공화국이 출범한 뒤로는 호남을 대표하는 진보당, 영남을 대표하는 보수당이 중도층의 향배에 따라 번갈아 가며 정권을 장악하는 구도가 고착됐다.

제6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9번의 대선에서 보수 5번, 진보 4번의 대통령이 배출됐고, 야당 분열로 인한 13대 대선을 제외하면 보수와 진보가 동등한 횟수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또한 양당은 지금까지 DJ를 정치적 수장으로 받드는 민주당과 YS를 받드는 국민의힘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양분하며 산업화 이후 민주화를 넘어 글로벌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고 있다.

양당은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정치적인 부침을 거듭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채택되어 전두환 독재의 후예 노태우에 승리하기 위해 야당 후보들은 단일화가 절실했지만 김대중과 김영삼은 독자 출마를 함으로써 국민이 원하는 독재 종식의 염원을 짓밟았다. 그 후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통해 여당인 민자당 후보로서 대통령에 당선되고 김대중은 대선 패배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하지만 1997년 15대 대선에서 김대중은 보수당의 후보로 선출된 이회창 후보가 김영삼 대통령과 틈이 벌어진 기회를 틈타 'DJP연합'이라는 절묘한 선거연합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이루는 과업을 달성한다.

DJP연합을 교본 삼아 노무현은 월드컵의 인기스타 정몽준을 안으며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다. 그렇지만 진보정권 특유의 노선전쟁과 편 가르기 권력투쟁에 빠진 사이 쇄신과 개혁으로 내실을 다지며 국민 속으로 들어간 보수정권에 권력을 내주게 된다. 대선 패배 후 노무현 세력은 폐족을 선언하며 처절한 반성으로 국민에 용서를 구하며 자정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 결과 박근혜 탄핵이라는 돌발변수로 권력을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철 지난 운동권 논리로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정책으로 스스로 무너져 정권을 헌납한다.

보수당인 국민의힘 전신 한나라당은 2002년 대선 패배와 동시에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으로 소멸 위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박근혜 대표체제에서 ‘천막당사’라는 배수진을 치며 뼈를 깎는 노력으로 보수정당의 기틀을 만들어 정권 재창출까지 이뤄냈다. 그런데도 권력에 취한 탓일까? 한때 보수 개혁의 상징이자 선거의 여왕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과 구속에 이르자 또다시 보수정당은 위기에 빠지고 대선에서 패배한다.

정권을 빼앗기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연거푸 패배한 보수정당은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혁신과 이준석이라는 젊은 당 대표를 선출했다. 이를 통해 박근혜 탄핵으로 갈라진 당심을 하나로 모아서 한때는 공정과 정의의 아이콘이었던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며 5년 만에 정권을 되찾는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보수의 가치는 공정과 정의, 상식과 법치였지만, 윤석열 정권은 민심과는 동떨어진 내로남불의 행태를 자행하고 내부 권력 다툼으로 민심을 잃어 급기야는 총선에서 대패, 입법권력에 대항하지 못하는 식물정부를 자초했다. 결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상남자로서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포기하는 한밤의 쿠데타’를 일으켜 자멸을 넘어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을 둘로 나누고 국민의힘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지리멸렬해 가던 민주당을 살려 준 주역은 문재인 대통령이 키웠지만, 적으로 돌아섰던 윤석열이 민주당에 산소 공급기를 달아 회생시킨 것이나 다름 없었다.

돌이켜보면 보수와 진보 양당은 처절하게 죽을 만큼의 노력을 해서 국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 정권을 되찾아 왔고, 권력의 맛에 취해 내부 투쟁에 몰두할 때 정권을 잃었다. 진보정당이 정권을 교체하고 재창출한 DJP연합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는 선거 교범에 길이 남을 일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오직 선거 승리를 위해서 상대방의 모든 요구를 다 수용했다. 정권교체와 정권 재창출이라는 명분 속에 자신들을 희생한 결과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보수당도 위기 속에서 국민의 마음을 얻은 두 번의 개혁이 있었다. 첫번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이회창 대선후보의 차떼기 선거자금으로 당이 해체될 위기에서 당사를 버리고 마당에 친 천막당사로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며 보수정당도 살리고 정권을 되찾아 재창출하는 토대를 구축했다. 두 번째는 박근혜 탄핵으로 지리멸렬했던 상황에서 이준석을 당 대표로 만들어 쇄신을 이끌고 윤석열 대통령을 만드는 계기를 열었다.

오늘 막을 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보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놓고 찬성했던 찬탄파보다는 반대했던 반탄파가 당권을 장악하고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이는 국민의힘이 아직도 탄핵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우리는 국민의힘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극복하는 두 가지 패턴을 이미 보았다. 첫 번째는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 당의 환골탈태를 이끌어냈던 박근혜와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를 선택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당원들 스스로의 변화다. 지난 당 대표 선거에서 30대 이준석을 선택해서 박근혜 탄핵의 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당을 혁신할 수 있게 했듯이 당원들이 들고 일어나는 길이다.

박근혜 당대표 체제에서 치러진 17대 총선 당시 박정희 독재 저항에 앞장섰던 김문수 의원이 공천심사위원장이었던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내년 지방선거 공천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답은 정해져 있다. 당 지도부가 풀무질과 담금질로 스스로 채찍질해서 살신성인해야 백척간두에 선 국민의힘을 살리고 당원들의 탄핵 트라우마도 치료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당원들이 들고 일어 날 것이며 반드시 그리 해야 한다. / 김건우 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