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 포항건설노조 파업 철회 시민대회
탈탄소 산업시대와 미국발 고율 관세 사태에 대한민국 철강이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불패 신화’를 자신했던 포스코의 미래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특히 ‘우향우 정신’ ‘영일만 신화’ ‘제철보국’이 상징하는 포항제철의 터전, 포항에 닥친 위기는 포스코의 부문별 자회사 설립 이후 외주협력사의 위상 변화로 인해 지역경제에 막대한 파급마저 예고하고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지난 50여년간 포스코와 외주사 간에 형성된 협력 관계와 명암을 간략히 돌이켜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다. / 편집자 주
▲‘공칠과삼’(功七過三)의 지역사회 협력
포항제철 신화의 주역인 고 박태준 전 회장을 중심으로 한 창업 1세대는 포항에 외주파트너사(외주협력사)라는 독특한 형태의 하도급 구조를 정착시켰다. 포항제철은 제철소 건설과 철강 생산을 동시에 진행하는 유례 없는 품질과 속도 위주 공정을 위해 업무 충성도는 물론 원청의 기술력까지 공유해 손발을 맞출 수 있는 ‘벤더’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정비, 환경, 운송, 조업, 에너지, 경비, 청소, 조경 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2008년에는 포항에 모두 61개사가 운영되기도 했다. 협력사들은 고강도의 제철소 외주 업무는 물론 ‘포항시민의 희생에 보답한다’는 박태준 회장의 지역협력 기조에 따라 고용과 구매 등 직접 효과 외에 장학과 체육, 문화 등 지역협력사업도 적극 펼쳤다.
이 가운데 ㈜동원개발 고 홍대원 창업자의 경우 박 회장에게 창업 초기에 발탁돼 조경 부문 외주를 맡아 전 세계 최고 수준의 ‘그린 제철소’ 조성은 물론 엘리트 씨름 선수 육성과 지역 출신 경영진 기용 등에 모범을 남겼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 그대로 원청과 하청의 안정적인 협력관계의 ‘득’에는 유착 구조 형성이라는 ‘독’도 생겨 났다. 특히 창업 1세대 전후 ‘전통 향촌사회’류의 유대관계는 포항지역사회에서 각종 영향력을 가진 인사들이 협력사 대표에 기용되면서 순기능은 물론 역기능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특히 80년대말 민주화 바람으로 지난 90년대 이후 당시 포항제철과 포항지역 간에 ‘포스코’ 사명 반대, 송도 백사장 유실 원인 공방 등 그간 숨죽였던 갈등이 촉발되는 와중에 외주사 경영자들의 역할도 민감한 영역에 까지 미쳤다.
주로 포항지역 출신의 경영자들은 시민·사회단체에는 직접 또는 후원 방식으로, 검·경에는 자문위원 등으로 참여하는 한편 언론사 및 기자들과도 긴밀한 유대를 맺고 환경 민원과 산재 사고 등 민감한 현안들에 포스코의 입장을 반영시켰다.
또 이 가운데는 포스코 창업정신의 취지에 맞춰 협력기업 경영자들에게 요구돼온 지역협력 책임을 무시한 채 원청과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을 오로지 독식해 포항 근교에 대저택을 지어 '*명대감'의 조롱을 받는가하면, 이해관계자들과 고급 주점을 전전하는 풍조가 만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포항의 한 사회단체 임원은 “지방정치인 등 포항의 소위 ‘유지’들이 협력사 대표를 맡으면서 겉으로는 지역협력이지만 사실은 부패 사슬과 다름 없는 유착구조의 폐해가 속출했다”면서 “오죽하면 ‘포스코 임원은 검·경의 포스코 내·수사 정보 보고가 상납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 생겼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5년 대구지검 포항지청은 포항제철소 상무와 협력사 대표 구속 등 2~3년에 한번 꼴로 포스코와 포항시를 포항지역 화이트 칼라 범죄 수사의 주요 대상으로 삼을만큼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국민기업포스코바로세우기위원회 임종백 위원장은 “포스코라는 원청이 유별난 하도급 구조의 정점에서 발주와 경영자 선임 등 절대적 권한을 가진 상황은 결국 부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창업자의 경영기조가 제대로 작동한 영역으로 보자면 포스코와 협력사의 관계는 경영과 지역협력 모두에서 순기능이 더 컸다”고 평가했다.
▲지역협력 ‘화양연화’ 계기된 건설노조 사태
2006년 6월말 전국을 뒤흔든 포항건설노조 포스코 본사 82일간 점거 사태는 영장청구 노조원 58명 전원 구속이라는 초유의 기록 외에도 포스코 하도급 구조 개혁의 과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파업 사태로 인해 건설노동자들의 열악한 임금 및 근로환경이 쟁점화되면서 ‘포스코 파트너사 대표를 맡으면 3대가 먹고 산다’는 하도급 관행 실태와 원가 경쟁력 상실 문제에 불씨가 이어졌다.
하지만 당시 사태는 포항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포항시와 사회단체들이 건설노조 파업 철회 촉구 대규모 장기 집회를 열면서 노사 문제에 외부 입김이 개입했다는 부정 평가와 함께 포스코와 외주사, 지역사회가 새로운 협력의 ‘화양연화’에 드는 계기가 됐다.
'포스코 포항제철소 파트너사협회' 홈페이지에는 4일 현재 전체 회원사 명단이 공개돼 있지 않다.
10여년간의 이 시기에 포스코는 수처리와 에너지 등 일부 분야의 경영자 추천 권한을 포항상의는 물론 한 애향단체에 위임해 지역언론인 출신들이 협력사에 가세했다.
2015년 권오준 회장 체제에서 검찰이 무려 10여개월 간 이어간 정준양 회장 비리 수사는 변변한 성과조차 얻지 못했으나 7월 포스코가 ‘외주 파트너사 100% 공개 입찰’ 등 경영쇄신 5대 방안을 발표하게 압박했다.
거래, 납품, 외주, 인사 관련 청탁을 봉쇄하기 위해 ‘100% 공개’ ‘100% 경쟁’ ‘100% 기록’ 등 ‘3대 100%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선언은 비현실적인 납품 단가 인하와 경영 압박으로 인한 ‘외주사 자격 반납’ 등 반발에 막혀 미완에 거쳤다.
▲나락의 시작, 포항지진과 ‘최정우’
지난 50여년간 포스코와 외주파트너사가 포항지역사회와 형성해온 관계는 너무 긴밀하면 부패 비리의 온상이 되는 등 문제가 있었지만 고용과 비용 지출 등 지역경제 활성화의 순기능도 컸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의 포항 유발지진 사태와 이듬해 최정우 포스코 회장 취임 이후 지난 8년여 기간은 나머지 40년간 쌓아온 성과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흑역사’의 시작이었다.
앞선 정준양·권오준 체제 혼란기의 와중에 정권의 어부지리로 등극한 최정우는 취임 초기부터 포항 유발지진 발생의 책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포스코는 사업시행자인 ㈜넥스지오에 증기터빈을 제공한다는 조건으로 포항지열발전소 컨소시엄에 참여한 주체였다. 지진 촉발로 인해 포스코의 비용 부담은 무산됐으나 당시 실증 명목의 사업은 정권 실세의 개입으로 포스코가 참여하면서 날개를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등 진상 및 원인 규명 운동에 나선 시민사회단체들이 2018년 9월 포항시 덕업관에서 8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민결의대회를 개최하기 전 포스코는 조직적인 와해 활동을 벌였다.
당시 포항제철소는 포항지역발전협의회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에 정치인 출신 협력사 실질 대표와 지역 토착기업 주변 브로커 등을 앞장 세워 일부 단체를 회유, 이탈시켜 물의를 일으켰다.
최정우는 포항 전체가 직면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듬해 수천억원대 서울숲 과학관 건립 기부 등 당시 민주당 정권과 서울시장의 환심을 사는 언행을 이어갔다. 심지어 조상의 식민지 배상 혈세를 희생한 국민기업의 위상을 부정하고 ‘기업시민론’을 내세워 포항지역과의 불화에 기름을 부었다.
경영과 지역협력 등 전 분야에서 오욕에 오욕을 거듭했던 최정우 재임 6년여 기간 두드러진 특징은 포항제철소 임원이 특정 정치인과 관계 협력업체 등을 통해 포항시정은 물론 시민사회운동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 2023~2025년 최정우 퇴진 운동 기간 동안 포스코 포항제철소 파트너사협회는 이례적으로 반박 입장을 발표해 포항시와 사회단체들을 압박했다.
2020년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과 2022년 태풍 힌남노 포항제철소 침수 사태 기간 동안 특정 임원이 마스크와 방재 복구 소모품 등 긴급 발주를 이용해 지역 정치인 및 관계 협력기업과 특혜를 주고 받았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 2023년 6월 포스코는 정비 부문에서 PS테크, PR테크, PH솔루션 등 3개 자회사를 설립해 기존 협력사들을 아래에 뒀다.
2023년 6월 출범한 포스코 정비사업 자회사의 포항 남구 사옥(사진= 포스코홀딩스)
당시 포스코는 힌남노 침수 복구 과정에서 규모화된 전문 정비업체의 신설 필요성에 따른 조치라고 강조했으나 일각에서는 지역과 불화를 빚던 최정우가 협력사의 기능 인력을 빼앗아 재배치, 지역경제에 타격을 입혔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특히 포스코가 자회사인 ㈜엔투비를 통해 소모품에서 중요 설비 부품까지 공개경쟁 입찰을 통해 협력사는 물론 납품업체에 영업 손실을 초래해 포항지역경제 전체에 최악의 파급이 현실화하고 있다.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 ‘미래한국재단’의 의뢰로 실시한 ‘포항지역사회 권력구조 분석’ 결과, 여론조사와 연구에서 모두 ‘포항시장이 최상위’라는 결과는 지금 시점에서는 다를 것”이라며 “포스코가 지역정치인 및 협력기업을 매개로 언론과 검경 유착을 통해 지역 권력구조의 상부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인사는 또 “포스코가 정준양에서 최정우에 이르는 최고경영인의 연이은 실패의 책임과 피해를 마치 포항지역사회에 떠넘기려는 듯한 지난 17년에 대해 포항사회 전체는 심각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면서 “창업자의 소중한 지역협력 기조가 반세기를 맞은 지금 새롭게 재평가해 포항과 포스코의 관계 재정립이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