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태종과 위징(이미지=챗gpt생성)

중국 역사상 태평성대의 한 시기를 다스려 ‘정관의 치’라 불릴 만큼 당 태종(이세민)이 올바른 정치를 행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인재 등용에 있었다. 626년 7월 2일 당 고조(이연)의 후계자를 두고 발생한 태자 이건성, 제왕 이원길 세력과 진왕 이세민 세력이 맞선 군사적 충돌인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에서 승리한 이세민이 황제가 되면서 통치한 태평성대의 시기를 ‘정관의 치’라고 부른다.

‘정관의 치’를 이룬 태종은 인재 등용에 있어서는 민족이나 정파와 상관없이 나아가서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까지 포용하여 등용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위징(魏徵)을 들 수 있는데, 황제 자리를 놓고 이세민과 제위를 다투었던 이세민의 형 이건성의 핵심 참모였다. 위징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 중 한 명으로 정치적 안정, 경제적 번영, 융숭한 문화적 발전을 이룩한 시기를 다스렸다고 평가받는 당 태종의 신하로 직언도 서슴지 않은 충신으로 유명하다. 태종에게 올바른 정치를 펼치도록 끊임 없이 조언했으며, 위징을 비롯한 신하들과 당 태종이 나눈 이야기들이 ‘정관정요’에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제왕학의 교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관정요’에는 위징이 하루 동안 4번을 했다가 격노를 사기도 했을 정도로 재임 중 황제에게 간언만 300여 차례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태종이 성군이 될 수 있게 몹시도 괴롭힌 인물로 전해진다. 하지만 당 태종이 태평성대를 이룬 건 위징의 공이 컸기에, 위징이 죽자 태종은 ‘3일간 식음을 전폐했고, '구리로 만든 거울은 옷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는 흥망을 알 수 있으며, 사람은 충언을 통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다’며 애통해했다고 한다.

태종은 제위 중에 당나라의 영토 확장을 위해 여러 차례 군사 원정을 계획했다. 한번은 북쪽 돌궐을 침공하고자, 18세 미만이라도 건강하면 모두 징집하라는 징집령을 내린다. 이에 위징은 황제의 명이 부당하다고 거역하며 “연못의 물을 빼면 당장은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만, 내년에는 물고기가 없어진다. 지금 18세 미만을 군대에 보내면 훗날 세금은 누가 내고 병역은 누가 맡느냐. 지나친 정복 전쟁이 국가 재정을 약화시키고,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시켜서는 안 된다. 전쟁보다는 내정을 다지는 것이 장기적인 국익에 부합한다”고 강력하게 반대했고, 태종은 위징의 의견을 존중하여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태종은 신하들에게 과감하게 간언할 것을 부탁하며 역린(逆鱗)도 피하지 말고 직언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태종은 정치적 동지이자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목숨보다 소중한 장손황후가 죽자 국정을 등한시하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누각에서 황후의 묘만 바라보았다. 신하 중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할 때 위징은 나라를 물려받아 통치하는 자리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며 “아버지 묘를 보시는 줄 알았다”며 역린을 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용인술이 화제다. 이 대통령의 인사 통치술은 지금껏 우리 정치사에서 보여준 적이 없는 일이라 정치권뿐만이 아니라 국민들도 의아해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장관을 유임시키고, 계엄을 옹호한 보수당 인사를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발탁했고, 나아가서는 차기 총리 후보자까지도 보수 측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능력 우선의 탕평인사라고 말하지만, 이는 여야 양쪽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다. 여당은 대통령을 배출한 당의 인재들을 무시한다고 반발하고 야당은 인재 빼가기 분열 조장이라 저항한다. 그러함에도 이 대통령이 인사 혁신을 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으로 일회성이 아니라 진정성 있게 추진한다면 우리 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보수 집권 기간 5번의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반대편에 섰었고, 두 번의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반대편에서 일했던 후보자를 장관으로 발탁한 의도는 단순히 보수 인사 한 명 데려와서 벌이는 ‘지방선거 판 흔들기’만은 아닐 것이다. 야당의 반발과 여당 일부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후보자의 능력이 필요했고, 그의 능력이 대한민국과 국민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기에 낙점했을 것이다. ‘맞습니다. 지당하십니다. 옳습니다’가 판을 치는 곳에서 ‘그건 아닙니다,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라고 애써 믿고 싶다.

장관에 지명된 후보자도 위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면서 그 직을 수락한 것은 자신의 부귀영달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선택했을 것이다. 언제라도 그만둔다는 각오로 대한민국 국가 예산에 대한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 후손들에게 지우지 못할 빚을 안기는 우(愚)에 동참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항상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국가의 백년지 대계를 위해 직언을 서슴지 말고 역린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친정 식구들의 모진 소리 들어가면서 한 힘든 결정에 보람을 느낄 것이다.

‘정관정요’에서 위징이 태종에게 충신(忠臣)과 양신(良臣)의 차이를 말하며 '양신이 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하는 대목은 압권이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이재명 정부에서도 양신이 많이 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위징은 ‘양신은 스스로 아름다운 명성을 얻고, 임금도 좋은 명성을 얻게 만들기 때문에 그 영예가 대대로 전해진다. 하지만 충신은 임금에게 우매한 군주라는 악명을 쓰게 만들고 나라와 가정 모두를 파탄에 이르게 해 얻는 것은 공허한 명성 뿐’이라며 태종에게 함께 성공하는 성군과 양신의 길을 제시한다. 이재명 정권이 '문고리' '핵관' '조국 촛불' 등에 막을 내린 지난 정권들을 되돌아봐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김건우 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