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해연, 동학농민전쟁 최후 격전지 전남 장흥 답사
27일 회원 등 45명 참가해 1,699기 묘소 참배
뉴스포레 주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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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16:48 | 최종 수정 2024.07.2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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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동대해문화연구소(이사장 이석태)가 주관하는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선생 유적지 답사가 지난 27일 전남 장흥군 일대에서 열렸다.
29일 동대해연에 따르면 이날 답사는 선착순 모집한 회원 45명이 참가하는 성황 속에 1895년 발발한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인 ‘석대들’ 한 켠에 개관한 장흥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관람을 시작으로 진행됐다.
이날 답사는 특히 전국 동학농민혁명연대 고재국 대표, 박형대 전라남도의원, 최경석 전 전남도의원 등 장흥지역 인사들의 환대 속에 김상찬·이영민 장흥문화관광해설사가 안내와 해설을 맡아 행사 의의를 더 했다.
답사단은 기념관 답사에 이어 동학농민전쟁 당시 동학농민군들의 시신을 이장해 가매장한 장흥 공설공원 4묘역을 찾아 1천699기 묘소에 참배했다.
장흥은 1895년 1월 전북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로 알려져 있다.
당시 남도 땅끝 장흥에는 공주 우금치와 원평 금구 태인에서 패퇴한 농민군 3만여 명이 기세가 꺾이지 않은 채 강진과 해남 전라병영성 장흥부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설치해 자치행정을 하고 있었다. 이에 조정은 나주에 초토영을 설치해 일본군과 관군 연합부대를 세 갈래로 남하시켜 무자비한 토벌 작전을 폈다.
미나미 쇼시로가 이끄는 일본군 후비 보병과 관군 연합부대는 신식 첨단무기로 무장했지만 그 수는 1천여 명에 불과했다. 이들 연합부대는 장흥읍 석대들과 관산읍 옥산촌에서 농민군 3만여 명을 맞았으나 무기가 열세인 농민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이로써 장흥은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가 됐다. 하지만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등 동학지도부가 체포되거나 숨진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했다는 점에서 동학은 물론 민족사에서 큰 의미를 띤다.
이날 답사단은 동학유적지 관람과 참배 후 안중근 의사를 모신 사당인 장흥군 부춘면 해동사(만수사)와 전국에서 유일하게 호도를 주제로 한 귀족호도박물관을 관람하기도 했다.
(사)동대해문화연구소 이석태 이사장은 “인구 3만 5천의 작은 도시 장흥군도 동학혁명의 희생자를 추념하는 시설을 조성해 후대에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데 정작 동학혁명 전체를 지휘하고 이끈 해월 최시형 선생의 고향인 포항에는 기념관은 커녕 생가지 복원도 이뤄지지 않은 현실이 안타깝다”면서 “올 12월경 결성될 해월 최시형 선생 기념사업회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답사에서 김상조 포항시 역사문화관광해설가는 버스로 이동하는 동안 동학의 1·2차 봉기를 한 고부에서 장흥에 이르기까지 동학농민전쟁 전반의 역사 해설을 해 답사단의 이해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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