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명패를 들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지난 2022년 3월 10일에 치러진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들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이재명 후보와 불과 247,007표(0.73%) 차이밖에 나지 않을 정도로 박빙의 결과였다.

이는 역설적으로 국민들이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 힘에 주는 엄중한 경계였고, 정권 연장에 실패한 민주당엔 지난 5년간의 실정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였다.

이어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대승을 하자,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준 경고의 의미를 잊고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내부 권력다툼을 벌이며 자멸하기 시작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최고 권력자로 만들고,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준석 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 대표를 제거한 후 치러진 국민의 힘 대표 선거에 관여해 김기현이라는 꼭두각시를 내세우기 위해 대선 후보 단일화로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자 인수위원장인 안철수 의원에다 나경원 의원까지 당선 저지와 불출마 유도를 위해 '윤핵관'들과 온갖 추태를 일삼았다.

아마도 그 자신은 그때쯤 대통령 선거에서 가졌던 국민을 향한 경외심이 지방선거 승리를 거치며 오만함으로 변질되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처럼 오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바로잡을 기회는 있었다. 2023년 10월에 치러진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초심으로 돌아갔다면. 그래서 대선에서 국민들이 선택해준 0.73% 차이를 인정하고 다시 살얼음판을 걷듯이 민심을 읽고자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깜'도 되지 않는 후보를 내세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이후 윤 대통령과 국민의 힘은 2024년에 있을 22대 총선을 위해 아무런 능력도 검증되지 않은, 일명 '긁지 않은 복권'인 한동훈 비대위원장과의 분란으로 제대로 된 승부도 펼쳐보지 못하고 정권심판론에 사상 초유의 참패를 당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는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안철수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한동훈 비대위원장 등과 깡그리 척을 지는 정치를 이어갔다. 공자가 말하는 정치의 요체인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오게 하는 것'(近者說 遠者來)에 역행했다.

윤 대통령은 정치의 기본인 용인술에 대해서만큼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한치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는 인재 등용 시 가장 기본적인 미덕인 ‘의심 나면 쓰지 말고,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疑人不用 用人不疑)는 말이 무색하게 인간 경영에 실패한 국가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이러한 결과로 22대 총선에 참패한 이후, 이재명의 민주당이 국회에서 국무위원 탄핵과 김건희여사 특검법을 발의하고 2025년 예산마저 단독으로 삭감 처리하자 지난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기에 이른다.

윤 대통령은 대선에서 국민들이 역대 최저 표차로 당선시켜준 의미도 잊고 22대 총선에서 거대 야당을 탄생시킨 국민의 뜻을 받들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반성해서 초심을 찾고자 노력해야 할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모든 책임을 '배은망덕한' 한동훈의 국민의힘과 의회 권력을 차지하고 자신을 능멸한다고 생각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여의도'를 탓하며 백일몽같은 불장난을 벌인 것이다.

이후 놀랄 일은 더 있었다. 군 통수권자요, 행정과 치안권을 쥐고 있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계엄선포와 그 후 처리에 임한 과정을 보면 지난 2년간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필부가 가족여행을 가더라도 일정과 경우의 수에 대비해 리스트를 작성해서 시간을 두고 준비를 한다. 하물며 '1979년 겨울 트라우마'가 아직 생생한 나라에서 12·3사태는 있어서도 안 될 일이었지만, 분단국가에서 계엄이란 게 이렇게 허접하게 이뤄져서야 될 일이던가.

차라리 대한민국의 체계가 이제 잘 잡혀 대통령이 무능해도 잘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준 계기라고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실패한 계엄을 보면서, 헌법재판소에서 변명으로 일관하는 윤 대통령을 보면서, 바이든 대통령에 선물 받았다던 집무실 책상 위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명패를 들고 TV에 나와서 자랑하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묻고 싶다.

지금 혹한 속 전국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와 석방을 위한 시민들의 애절한 시위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혹여라도 여기에 오판해 고무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은 당신들을 위해서 저 엄혹한 추위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서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합당한 분노는 범법자 이재명과 민주당 추종자들이 의회 권력을 쥐고 윤 대통령과 똑같이 아집과 독선으로 나라를 망칠까 두려워서 일어선 것일뿐 윤 대통령과 국민의 힘을 지지해서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바란다.

추위 속에서 스스로 생명을 위협하듯 몸을 내던진 '태극기 부대'에 대해 대통령과 국가의 안위를 하나로 보는 안경을 끼고 있다고 비아냥 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절박한 심정아래에는 자신이 설움 받았던 못 사는 나라로 되돌아가지 않겠다는 자식에서 부모로 이어져 겪은 피땀 어린 기억이 아로새겨져 있다.

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모든 죄는 나에게 있다'며 책임지고 명령을 수행한 부하들에게 더 이상 자괴감을 주지 않기를 당부드린다. 논어에 '군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잘못을 찾는다'(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고 했다. 필부일지라도 이런 미덕은 아침저녁으로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지 않은가?

부디 국민이 선택한 정의감 넘치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돼서는 군자의 길을 걸어 지금은 죽지만, 영원히 소인이 되지 않는 길을 걷기를 간청한다. 국가에 해악이라고 생각하는 세력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 하야해서, 대한민국이 어둠을 뚫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책무임을 상기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바라는 바는 하나다. 위선과 거짓으로 포장해 표리부동을 밥 먹듯이 했던 조국이 들어가 있는 곳에, 제 혼자 살겠다고 여의도를 방패막이로 삼아 국민을 우롱하는 이재명 대표, 그리고 누구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국가를 사지로 내몬 대통령이 한 곳에서 죄값을 치르고 개과천선해서 가족과 일신의 안녕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국민으로 재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김건우 정치에디터 겸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