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묻지마식 의회 폭주'에 대해 항의하는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사진=MBN캡쳐)
국민의힘이 대통령 선거에 패배한 지 한 달여가 지났지만, 변화의 조짐은커녕 존재가치를 부정당할 정도로 대선 패배에 대한 복기도 없고 어떻게 변화를 추구해야 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지도 못 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선출되었지만, 원내지도부는 탄핵반대파인 수구세력으로 구성되었고 김용태 비대위원장이 요청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추진 △김문수·한덕수 대선 후보 교체 시도 진상 규명 등 5대 개혁안을 사실상 거부함으로써 부끄러운 과거와의 단절을 회피하는 행태로 시작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아직도 대통령 선거가 왜 실시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잘못해서 대선에서 패배했는지에 대한 원인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무엇을 쇄신하고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복안을 제시할 생각 자체가 없어 보인다. 당장 8월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수구세력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단일 지도체제’를 ‘집단 지도체제’로 변경하겠다는 꼼수나 부리고 있어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내 밥그릇만 지키면 된다는 ‘꼰대’로 전락하고 있다.
시중에서는 '영자당'(영남 중심 자민련)이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국민의힘은 국민의짐’ 이라는 비아냥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바탕에는 영남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들이 민심과는 동떨어진 행동으로 아직 3년이나 남은 다음 총선까지 의원직이 유지되니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장 다가오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이 상태로 가면 수도권은 전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재명 정권이 영남권 장관을 앞세워 내년 지방선거에서 영남권 단체장 석권이라는 목표를 공공연히 내세워도 '영자당' 의원들은 내 지역구만 지키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증인 없는 청문회와 자료 제출 없이 '내 말이 곧 진실'이라는 김 후보자의 청문회 태도를 보며 국민들은 기가 막혔다. 이러한 오만함에도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고, 당내 쇄신 의지도 없이 여당의 국정을 견제조차 못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국민들이 ‘국민의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국민들은 아직도 국민의힘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자기들이 여당인 줄 착각하는 게 아닌지 눈을 의심하고 있다. 범여권의 국회의석수가 절대적인 상황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의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국민의힘 의원들 몇몇이 모여서 구호 서너 번 외치고 할 일 다했다는 식의 행동으로 정부와 여당을 견제했다고 할 수는 없다.
'국힘'은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의 부적격 사유와 '법사위원장은 야당이 가져야 한다'는 정당한 논리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고 국민들에게 소상히 고해서 여론을 등에 업어야 했었다. 이재명 정부와 거대 여당이 '모든 것을 국민을 위해서'라고 포장한다면,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재명 정부와 여당보다 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면 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취임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추경을 편성해서 전 국민에게 최저 15만 원에서 52만 원까지 차등 지급하고 지역화폐를 발행하기 위해 30조를 국회에 요청해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국민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거저 ‘포퓰리즘’이고 '취임축하금'이라고 비난하지만, 돈을 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진정으로 국민의힘이 대한민국을 위한다면 비난을 위한 비난만 할 일이 아니다. 정말 지금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과연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면 옳은 일인지, 승수효과를 가져와서 경제를 살리는 일이 맞는지, 지난 사례를 명징하게 가지고 정부 여당과 협상을 하고 국민의 여론을 되돌려와야 할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 송언석 지도부는 오로지 수구세력의 기득권만 지키면 된다는 전략만 앞세우다 보니 정부와 여당을 상대할 세부적인 전술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인다. 오직 8월 전당대회에서 쇄신을 외치는 개혁파에게 당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술수를 만들기에만 정신이 팔려있어 보인다.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생물은 가장 힘이 센 것도, 가장 지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오직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라고 밝혔다. 이것을 국민의힘에 대입하면 “다음 총선에서 살아남을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하고 반대했던 의원도, 영자당 의원도 아니다. 오직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변화와 개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만이 다음에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정권 초라 하지만 국민의힘 지지율이 민주당의 반도 안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뭔가라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대선에 승리한 민주당의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정청래 의원이 들고 나온 ‘586 운동권 청산론’을 보면 민주당이 이번에 잡은 정권을 당분간 이어갈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87 체제 청산’이다. 87년 민주화 운동의 산물인 권력구조 개편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5년 단임제인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소선거구제에 대한 개헌과 민주화라는 단어 하나로 아직까지도 권력을 탐하고 있는 이들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민주당은 이렇게 승리의 축배를 내려놓기도 전에 변화와 쇄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청래 자신이 청산 대상이면서 같은 동지들을 청산하는데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에서의 인적 청산과 새로운 인재 영입을 위한 화두를 민주당이 선점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금 상태로 조용함 속에서 사그라드는 불씨가 되어간다면 지난 2018년 지방선거에서처럼 대구 경북을 제외한 지방차지단체장에서 완패한 역사가 내년에 재연될 가능성은 불을 보듯이 확연하다. 지도자라면 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난 대선이 왜 치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대선에서 패배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서 백서를 만들기를 제안한다. 그리하면 해결할 방법이 나올 것이다. 이 길만이 국민의힘이 진정한 국민의힘으로 태어나는 길이다.
다윈의 말 대로 지금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를 반대한다면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몰라서 안 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다.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노력에는 자기희생이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을 사랑하는 당원들과 국민들을 믿고 차곡차곡 한발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국민의짐’이 아니라 진정한 국민의힘으로 거듭날 것이다. /김건우 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