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이슈]포스코 기업시민의 첫 번째 유혹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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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11:13 | 최종 수정 2024.03.0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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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스코에 대한 매우 낯선 수사가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포스코가 마치 검찰만의 불가침 영역인 것처럼 유독 나서지 않던 경찰이 포항제철소의 3억원대 납품 계약에 대해 내사기간까지 합치면 11개월째 수사를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부장급 기술직 간부가 참고인 조사를 받은 다음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외근기자 시절 늘 검찰을 출입한 경험에서 경찰의 포스코 수사나 피조사자 임직원이 유명을 달리한 일은 아직까지 별로 기억에 없다.
포스코가 최정우 회장 취임 이후 새로운 기업이념으로 알려온 ‘기업시민’의 관점에서 이번 일을 생각해봤다. 본건 수사든, 별건 수사든, 임직원의 비리가 드러난다면 포스코는 기업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위상이 흔들리게 된다. 물론 어느 조직이든 부패와 비리의 독버섯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조직이 기업시민을 정체성으로 지향하고 내부의 기강을 벼릴 모멘텀으로 삼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시민의 기본 요건은 바로 자율과 책임이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조직 바깥의 고객인 시장과 사회에서 기업시민을 지향하려면 내부고객인 임직원이 먼저 기업시민이 돼야 한다. 이 대전제가 유지돼야 포스코의 기업시민론은 ‘전통적 기업목적을 넘어 고객, 직원, 공급사, 협력사,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의 가치 우선 경영’ 목표를 완성할 수 있다. 마치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공동체 집단과 다름 없는 공공선을 추구하는 최 회장의 경영 이념은 대단한 도전이지만 목표에 이르기까지 시련의 가시밭길이 펼쳐져 있다.
특히 임직원의 비리 사건은 포스코 이해관계자들의 네트워크를 바탕부터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시민론의 심각한 위협요소이다. 공급사, 협력사와의 금품 및 향응을 매개로 한 직원의 부정한 결탁은 제품 품질 저하와 원가 상승을 유발하며 그 피해는 회사는 물론 고객에게 전가된다. 이런 공급사와 협력사가 주로 소재하는 지역사회는 지역기업가들이 지방권력인 토호세력에 가담한다.
이런저런 이름의 사회단체는 자본과 인맥으로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환경문제 등 기업이 유발할 수 있는 리스크를 묵인하고 동조한다. 한 예로 지난 2017년 11월 15일 지열발전소가 유발한 포항지진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포항시민들의 활동에 대해 사회단체들은 지원은 커녕 오히려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나선 일도 있다. 이 사업에 전기터빈을 공급하기로 한 포스코는 어떤 압력과 경위에 의해 지열발전사업의 컨소시엄에 참여하게 됐는지 포항시민에게 아직까지 어떤 해명과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가 소재한 도시들의 지방권력구조를 들여다보면 왜곡된 공식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검·경과 언론의 감시 기제와 지자체 권력을 통제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한 카르텔을 형성해 지역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 안에 보듬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꿈이 담긴 한 도시는 지역경제라는 당의정에 이끌려 건전한 도시 발전의 조건들을 시시때때 위협받고 있다. 따라서 포스코 기업시민론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현장은 바로 포항과 광양, 그리고 서울 등 직원과 협력사가 소재하는 도시들이다.
오는 7월 임기의 3분의 2를 채우게 되는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기업시민의 이념을 점검할 적기는 바로 지금이다. 그렇다면 무엇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당연히 자신의 동기와 신념부터 점검해야 한다. 포스코의 DNA는 거창하게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처음부터 기업시민이었음을 다시 각성해야 한다. 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창업정신 ‘제철보국’(製鐵報國)의 가치를 내부고객들과 다시 공유하고 자존감을 드높여 부패와 타협의 시시한 유혹들을 떨쳐내게 해야 한다.
사사(社史)는 포스코가 전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할 만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회사에 대한 역사인식은 포스코의 기업이미지는 물론 내부 결속력을 다질 최적의 소재이다. 창업자가 최고권력자가 발급해준 '종이마패'를 부정과 축재의 호신부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철강기업으로 국민에게 되돌려준 자긍심을 다시 공유해야 한다.
조상의 피에 보답한다는 신념 아래 피땀으로 일군 포스코의 이념을 어슬픈 지식으로 훼철하려는 유혹도 경계해야 한다. ‘제철보국에는 프로이센의 민족주의와 집단주의의 냄새가 난다’며 덧칠을 하며 상아탑 속에 숨어 있는 ‘향원’(鄕原)이 더 이상 기업과 시민의 판단을 흐리지 않게 해야 한다. 폴리페서를 흉내낸 ‘컴퍼니페서’는 이미 중앙지에 챙겨놓은 고정지면을 최회장의 전임자에 대한 아부와 곡필의 도구로 써버린 이력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민은 아직도 포스코를 국민기업으로 보고 있다. 힘들고 가난한 시절 국가와 민족의 가치에서 시작한 포스코가 시민의 가치에 중간기항을 하고 또 다른 미래 가치를 찾아 향하는 항로를 응원하며 성공을 기원한다.
*이 칼럼은 2020년 4월 게재된 <폴리뉴스>와의 협의 아래 전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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