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천 장군 부부의 모습. (사진= 국회방송 ‘나는 한국인이다’ 화면 캡쳐)

1920년대 초반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며, '진짜 김일성 장군‘ '백마 탄 장군’으로 불린 김경천 장군의 활약이 재조명되면서 국내에 귀화한 증손녀가 투병 중인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김경천 장군은 이회영 일가가 거액의 재산을 처분해 만주에 세운 신흥무관학교의 교관 출신으로 연해주에까지 건너가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지만 러시아의 공산화와 이념 갈등의 영향으로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1운동이 일어난 다음 날 만주로 망명해 독립운동가 양성에 이어 직접 항일무장투쟁 운동을 이끌었다. 당시 김경천 장군의 활약은 일본이 '사살하거나 신고하면 큰 돈을 준다'며 현상금을 내걸었을 만큼 항일무장투쟁에서 비중이 컸다.

1923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주와 연해주 시베리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경천 장군'의 회견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유가족도 러시아에서 가난하게 통한을 품은 채 살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김 장군의 증손녀 김올가의 근황이 전해진 계기는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의 안병학 부이사장과 김경호 전 주 러시아 정무공사에 의해서다.

안 부이사장과 김 전 공사에 따르면 김경천 장군의 딸 김지희는 생전에 그녀의 딸 김올가에게 “너는 러시아어도 알고 한국어도 할 줄 아니까 할아버지의 묘를 한국으로 옮겨 달라‘고 당부했다.

어른들로부터 할아버지의 영웅담을 들으면서 성장한 김올가는 결국 독립운동가 후손의 자격으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귀화했다. 뿐만 아니라 기개도 남달라 꾸준한 노력을 펼쳐 (가칭)'김경천 장군 선양회‘ 설립을 이어오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는 김올가와 '김경천 장군 선양회‘ 설립을 도와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판막이 두 개 밖에 없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투병 중이며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대동맥판막 치환술이라는 대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협회를 통해 알려졌다.

안병학 부이사장은 "대부분 순국선열의 후손은 가난을 대물림하여 어려운 삶을 살며 타국에서 '디아스포라(유랑민족)'로 떠돌고 있다"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을 오래도록 기억해야 하며, 선대의 투쟁으로 피폐한 삶에 처한 후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김경천 장군의 후손 김올가 투병을 위한 후원계좌는 'KB은행 김올가(김경천 장군 선양회) 053601-04-194061'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