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사진=한동훈 페이스북)

국민의힘이 윤희숙 혁신위원장을 중심으로 당 쇄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곰곰히 따져 보면 이번 쇄신의 핵심이 지난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한동훈파와 그에 반대했던 반 한동훈파의 세력 다툼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보수를 절망으로 몰아넣은 윤석열과 친윤이니, 친한이니 하면서 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당파싸움에 여념이 없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희망의 끈을 놓은 지 오래다.

일부 국민의힘 당원들은 한동훈 전 대표에게 국민의힘이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에 대해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의 논리에서 자유로운가 반문하고 있다. 또 지난 대표 선거에서 당원들의 60%가 넘던 압도적인 지지에서 지난 대선에서는 왜 반 토막이 났는지 복기해 봐야 하며, 한동훈이 일부 팬덤의 아이돌로 남을지, 아니면 보수의 지도자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할지 답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500년 전으로 돌아가서 지금의 정치 상황을 되돌아보자. 중국 춘추전국시대 위나라의 양혜왕이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나오지 않자, 맹자를 초빙해서 자문을 구한다. 양혜왕이 “과인은 마음을 다해 백성을 다스려, 하내 지방이 흉년이 들면 하동의 곡식을 옮겨 하내 지방 백성을 먹이고, 하동 지방이 흉년이 들면 또한 그 같이 하는데, 이웃 나라의 정치를 보면 나와 같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 이에 맹자가 “왕이 전쟁을 좋아하시니, 그것으로 비유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전쟁터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한 병사가 갑옷을 던져 버리고 병기를 질질 끌며 도망을 쳐서, 백 보쯤 가서 멈추었고, 또 다른 병사도 도망치다가 오십 보쯤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서는 오십보 도망친 자는 백보 도망친 사람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반문했다.

양혜왕은 “오십 보나 백 보나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요?”라고 답했다. 맹자는 “그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 개와 돼지가 사람의 음식을 먹어도 단속할 줄을 모르며, 도로 위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창고를 열 줄을 모르고 사람이 죽어도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흉년이 그렇게 한 것이다'고 말한다며 이것은 사람을 찔러 그를 죽이고 말하기를,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병기가 그렇게 한 것이다’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왕이 흉년 탓함이 없으면, 천하의 백성들이 모일 것이라면서 양혜왕의 이중적인 태도, 즉 ‘백성을 선택적 사랑함’에 일침을 가한다.

여기서 ‘오십보백보’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한다. 잘못한 것에 대해 경중의 차이를 나눈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로서 위정자가 백성을 위함에 있어서는 편차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 국민의힘이 혁신을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시 엉망진창으로 만든 당헌 당규를 개정하고 지난 과오를 당헌에 새겨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혁신위가 연일 새로운 안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런 세부적인 문제보다는 근본적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벌어졌던 당내의 문제에 대해 왜 그렇게 했는지부터 먼저 반성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당시 지도부는 정권을 창출한 동반자의 지위로서 수평적 당정관계인 행정부 견제를 포기하고 '용산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서도 사전에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집권 여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다고 봐야 한다.

여기서 많은 국민이 한동훈 전 대표에게 의아심을 가지는 대목이 시작된다. 한 전 대표를 일개 검사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해 집권 여당 총선을 책임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보낸 사람이 윤석열 전 대통령이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동훈 전 대표는 여러 번 밝혔듯이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불법 계엄은 아버지라 하더라고 반대한다”고 밝혔다. 한 전 대표의 공적 마인드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분법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단테의 신곡을 봐도 천국과 지옥 그 가운데 연옥이 존재하고, 보수와 진보 사이에도 중도층은 존재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선과 악, 옳고 나쁨은 도덕적인 구분일 뿐이다. 선도, 악도, 도덕, 부도덕도 함께 다 안고 고난의 길을 가야만 하는 것이 지도자가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룩한 진시황은 이사의 글 ‘간축객서(諫逐客書)’를 받아들여 천하를 통일한다. 이사는 이 글에서 “태산은 한 줌의 흙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큰 산을 이뤘고, 강과 바다는 작은 개울물도 가리지 않았기에 깊어졌다(泰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며, "천하통일을 위해서는 인재의 등용에 구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진언해 진시황에게 기여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먼저 윤석열 정권의 실패에 있어 장관과 대표를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공동책임에 대한 공과를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만 국민의힘 의원들도 지난 과오에 대해 사죄할 명분이 생길 것이고, 그 이후 협심해서 다 함께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한다면 국민들은 보수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희망을 가질 것이다. 여론은 절대 판사의 판결문이 아니다. 진실과 민심의 차이를 우리는 지난 선거 당시 조국당을 보면서 확인했다. 진실도 중요하지만, 여론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중도 확장도 중요하지만 확실하게 보수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한 전 대표에게 지금은 적기다. 바닥에 이른 국민의힘이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포옹'(抱擁)하고 '포용'(包容)하는 정치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면 꺼져가는 보수의 희망으로 재탄생하는 기회는 다시 한번 주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