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5월 제69대 법무부장관에 임명된 한동훈 전 대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 (사진 제공= 대통령실)
춘추전국시대에 제선왕이 맹자에게 “탕왕이 걸(桀)을 추방하고 무왕이 주(紂)를 정벌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맹자가 “옛 책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제선왕이 “신하가 그 임금을 시해해도 됩니까?”라고 물었다. 맹자는 “'인'(仁)을 해치는 것을 '적'(賊)이라 하고 '의'(義)를 해치는 것을 '잔'(殘)이라 하며 '잔적'(殘賊)하는 이를 '일부'(一夫)라 하니, 일부인 '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어도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한다. 맹자는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을 책임져야 할 군주가 그 본분을 다하지 않은 채 개인의 사익을 위해 국가의 권력을 행할 경우 이는 일개 필부일 뿐이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는 이를 죽임은 당연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사기에 보면,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왕은 말희라는 미녀에게 빠져, 그녀를 위한 거대한 궁전을 완성하고 자주 축하연을 열었다. 이때 말희가 “무희들의 숫자도 적고 옷도 초라하니 3천 명의 궁녀에게 오색 옷을 입혀 춤을 추게 해 달라” 말하자, 걸왕은 전국의 소녀들을 잡아들이게 하고, 오색 옷을 수놓게 하였다. 그 다음부터는 오색 옷을 입은 3천 명의 소녀들이 궁전 뜰에서 춤을 추었고, 무희들이 한 사람씩 술을 따르는 것을 보고 말희가 “술로 연못을 만들고 연못 둘레에 고기 숲을 만드는 것은 좋겠다”고 주문하자, 걸왕은 다시 '주지육림'(酒池肉林)을 만든 것이다. 이후 주지육림에 빠진 걸왕에게 신하인 관용봉이 충심으로 간하였지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자 신하들은 걸왕과 말희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은 걸왕과 말희의 주지육림 놀이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했고, 형편이 안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밤낮으로 공사에 동원되어 사역에 시달렸다.
국가의 재정이 악화되자 군사들은 약탈을 위해 전쟁터로 나가야 했고, 수 많은 백성들이 공사장에서 혹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걸왕의 난폭함은 더욱 심해졌고 백성들의 아비규환이 이어지자, 은나라 탕왕이 마침내 칼을 들고 일어나 국가와 국민을 등한시하고 오직 말희만 사랑한 걸왕을 처단하여 백성들에게 새로운 세상, 상나라를 개국하게 된다. 맹자는 여기서 ‘견리사의’를 말한다. 비록 왕 노릇을 하고 있을지라도 국가와 국민이라는 공적 영역을 도외시하고 개인의 이익만 추구한다면 왕의 자리에서 축출되어야 마땅하다고 설파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의로움과 인자함이 없다면 군주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이 한동훈 후보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을 배신했다고 연일 비난하고 있다. 이는 보수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공·사 구분이 모호한 잘못된 행위이며 봉건시대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소아주의 발상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한동훈 후보를 황태자로 만들었다'는 '배신자 프레임'을 한번 들여다보자.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 득표 차는 이재명과 불과 1%도 채 되지 않았다. 당선 후 그는 자기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한동훈 카드'를 활용했다. 특히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법무부 장관 임명에 이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추천해 아바타로 활용하려 했지만, 한동훈은 결국 그가 기대했던 충성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배신자가 된 것이다.
만일 윤 전 대통령이 한동훈이 무능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정실인사로 챙겨줬다면 그는 임명권자에게만 맹목적 충성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동훈이 가진 능력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윤석열 정부의 위태로운 지지율을 떠받쳐준 한 축이었고 좌절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정도로 군계일학의 인사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 없는 계엄 선포를 보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한동훈의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20년 지기 윤석열 전 대통령과 사적 관계를 뒤로 하고 인연을 정리하기엔 인간적인 아픔이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는 ‘아버지가 계엄해도 반대한다’고 밝혔듯이 한동훈이 가진 자리는 윤석열을 위한 사적인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만 총통 장개석은 국민당의 부패로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쫓겨간 뒤 부패 청산과 기강 확립을 내치의 중심에 뒀으며 가족에게도 이를 철저히 주문했다. 하지만 그의 둘째 며느리가 밀수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한 결과 엄청난 양의 보석이 발견됐다. 장개석은 며느리를 불러 밥을 사주며 "이게 마지막 식사가 될 것 같다"고 말하며 생일 선물로 보석상자를 선물한다. 가슴이 뜨끔해진 며느리는 집에 돌아와 풀어본 상자에 들어 있던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 국민들의 장개석과 국민당 정부에 대한 신뢰는 급상승하게 됐으며, 그 결과 부정 부패 엄단의 엄격한 법시행은 별다른 저항 없이 단행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금쯤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았던, 사랑하는 동훈이의 충고를 들었더라면'이라고. 장개석 총통과 며느리의 이야기만 상기했더라도 그는 멋진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물어본다. 과연 한동훈은 배신자인가?
/김건우 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