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칼럼]누가 포항의 아들·딸인가?

2016년 영화 '검사외전''글로리데이즈'는 명예 왜곡
현실에서도 국회의원 3명 구속 등 정치 재앙 잇달아
지열발전지진, 태풍 '힌남노', 최정우 포스코 사태도
'24년 22대 총선은 도시 명예 회복할 선량 선출 기회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승인 2023.12.31 13:46 | 최종 수정 2024.02.05 03:27 의견 0
임재현 발행인

2023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한 그날 밤,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50대 중반에서 멀어져가는 나이에 내년 총선이 코 앞인데도 아직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를 두고 망설이는, 미숙한 정파적 입장 때문은 아니었다. 김성수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선가 엇비슷하게 한 걸로 기억나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얘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화의 힘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갱상도’를 국민에게서 갈라칠 의도가 없기를 바랬다. 당시 상당수 쿠데타 세력의 출신지가 그랬더라도 영남 사투리는 이번에도 수구보수의 뒤틀린 상징이었다.

영화 속 광화문에서의 마지막 대치 장면처럼 멋진 정우성을 배우로서 더 우뚝 서게 한 장태완 수경사령관의 배역이 정승화 참모총장을 맡은 이성민이었으면 어땠을까? 30여년 전 향군회장의 자격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 장태완 장군은 마치 고향 칠곡군에서 어제 상경한 듯 투박한 사투리의 기억이 생생하다. 90년대 황금기를 누렸던 대학로에서 민주화를 맞아 해금돼 관객들을 끌어들였던 노동극이나 시대풍자극에서도 악덕 사장과 부패 정치인 배역은 대부분 경상도 말씨였다. 당시 그걸 짚어낸 기사나 칼럼들이 신문의 문화면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서봄’의 전율은 차라리 낭만에 가까울 뿐 내년이면 개봉 8년이 되는 영화 두편의 기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배우 강동원·황정민이 출연해 2016년 2월 개봉된 ‘검사외전’에는 악질부패 검사(이성민)가 ‘포항의 아들’을 외치며 국회의원에 당선됐다가 비자금 장부가 폭로돼 구속의 나락에 빠진다.

흥행 불륜드라마 ‘부부의 세계’ 무대가 경기도 한 도시명을 가공해 방영했듯이 제작자들은 민감한 소재에 대해서는 개인은 물론 도시 전체의 반발과 소송에 대비한 장치를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아예 실명으로 도시를 블랙코메디의 시시한 무대쯤으로 전락시킨 영화에 망신을 당한 포항시민들이 잠자코 있던 한달 뒤 ‘글로리 데이즈’가 상영됐다. 겉으로 보면 줄거리는 스무살 남짓의 서울 친구 몇 명이 바람을 쐬러 찾았던 바닷가 지방도시에서 온갖 몹쓸 꼴을 당하며 세상에 눈 뜨게 된다는 성장영화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영업 중인 여남동 통닭집 부근 영일대해수욕장을 비롯해 마치 관광홍보를 하는 것처럼 보였던 영화 속 포항의 실체는 아름다운 경관과는 거리가 먼 ‘소돔과 고모라’의 도시였다. 포항은 부패한 경찰과 방송국 내 불륜 커플, 협잡꾼 등 온갖 일그러진 군상들이 풋풋한 외지 청년들을 나락으로 내모는 범죄도시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포항에서는 ‘검사외전’보다 한술 더 떠 ‘올로케이션의 무대로 전국적인 관광객 유치 효과가 날 것’이라며 단체관람하는 ‘웃픈’ 일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어디에서 이렇게 포항처럼 공개적 모멸을 당한 도시가 있을까? 과연 ‘영화는 영화일뿐’인가?

포항은 제철소 건설을 위해 기계천을 비롯해 개울이란 개울은 골재 채취에 파헤쳐지고, 명사십리 ‘어링불’의 길고 긴 백사장이 잘려나가는 희생을 겪었지만 ‘산업의 쌀’ 철강도시라는 자부심이 보상했었다. 돌이켜보면 2016년 두편의 영화로 상징되는 포항의 왜곡된 이미지는 남탓 이전에 시민 스스로 자책해야 할 책임도 있다. 남·북구에서 6선과 4선의 영화를 누린 두 중진 의원이 구속 신세를 나누고, 어느날 갑자기 서울에서 송곳처럼 꽂혔던 의원은 제수씨 성추행범으로 시민에게 망신을 안겼으며 전직 시장은 불귀의 객이 됐다. 이쯤이면 포항에 어울리는 정치 이름표는 ‘재앙의 연속’이라는 주홍글씨다. 공교롭게도 포항은 2016년 그해 총선에서 ‘우선공천지역’이라는 시민에게는 희한할 뿐인 ‘공천 요설’이 등장한 이래 인과관계가 짐작되는 여러 재앙에 시달리고 있다. 포스코 컨소시엄의 지열발전소가 촉발한 포항지진(2017), 포스코가 ‘포항시의 냉천 하구 인공구조물 설치’에 침수피해 책임을 돌렸지만, 뉴시스 보도를 통해 ‘70년대 공장 부지 확보를 위해 하구 위치를 변경’한 사실이 드러난 태풍 힌남노 피해(2022)는 사회·자연적 재난이다. 포스코홀딩스의 포항시민 협약 위배 및 최정우 3연임 도전(2023)은 기업·시민적 재난이다.

내일 솟구칠 2024년 갑진년 태양에는 22대 총선의 염원도 어른거릴 것이다. 이제는 부디 ‘포항의 아들·딸’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포항의 아름다운 바다와 들판, 계곡과 강을 닮은 선량들이 앞다퉈 나서 포항의 정신을 세우고 자부심을 회복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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