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은 지난 1979년 신군부에 의한 이른바 ‘12·12사태’가 발발한지 44주년째 되는 날이다. 올해 ‘12·12’는 하루 전 관객 7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으로 인해 김영삼 정부 이래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관심을 받는 역사적 이슈로 부각돼 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인 전두환·노태우를 비롯해 주요 인사들이 대부분 사망하거나 연로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더 이상 확인할 기회는 많지 않다. 이에 본지는 당시 초기 청와대 정무수석으로서 ‘5공화국의 설계자’로 불렸던 허화평(86)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을 8일 방문해 근황과 최근 한국사회에 대한 입장을 들어봤다. 이날 인터뷰는 사적인 만남과 대화를 근거로 이뤄져 허 이사장과 재단의 공식 입장은 아님을 전제한다. /편집자 주
▲ 요즘 근황은?
=나는 사상가다. 보통은 헷갈리기가 쉬운데 영어로 철학자는 ‘philosopher’(필로소퍼), 사상가는 ‘thinker’(씽커), 즉 생각하는 사람이다. 철학자는 우주와 인생을 비롯해 주로 내면을 들여다 보는데, 사상가는 안과 밖을 두루 살펴야 한다. 사회를 올바르게 발전시키려면 좋은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통찰은 좋은 사상이 있어야 가능하다. 사상가는 과거라는 역사에서 출발해 현재 상태를 넓고 깊게 관찰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 국가와 미래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공부한다. 1937년생인 내가 왜 공부하겠나. 나 자신도 위해서다. 왜? 내가 아는 만큼 상대가 보이고, 알아야 내가 질문할 수 있고, 답변할 수도 있다. 선진국 일본도, 중국도, 유럽도, 그들은 끊임 없이 사고를 한 결과,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나왔다.
▲ 공부와 사상의 가치를 강조하신만큼 많은 저작을 발간하셨는데.
=지난 4월에 ‘한국, 미완의 기적’을 펴냈다. 내가 책을 여러 번 썼지만 책 팔아서 돈 받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출판사에 “많은 사람이 읽히도록 판매는 당신들 마음대로 하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책값도 싸다. 방금 얘기한대로 중·일과 서양에는 뛰어난 사상가가 많다. 미국은 트럼트에 대한 논란이 나오면 바로 책이 한권 출판된다. 이들은 트럼프에 대한 논란이 나와도 ‘좋다, 나쁘다’, 바로 결론 내지 않는다. 트럼프에 관한 책이 나온다 하면 그거 들고 사람들이 판단한다. 우리는 그게 아니고 가짜뉴스 듣고 판단한다.
▲ 자신의 사상적 토대가 5공 정부의 개혁 정책 입안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 청와대 정무수석 당시 (자정 이후)‘야간 통금 해제’, ‘해외여행 자유화’ ‘연좌제 폐지’를 기획해 관철시켰다. 그런데 처음부터 정부 관련 부처의 반대가 심했다. 통금 해제에 대해서는 공안기관들이 특히 그랬다. “밤에 간첩들의 활동이 늘어날 수가 있다”고. 그래서 내가 물었다. “밤 12시 넘어서 돌아다닌 간첩이 있나, 술꾼들이나 걸려드는 거지.” 그리고 “이 통금 때문에 우리 국민의 경제 활동은 2분의 1밖에 못 한다. 24시간 해도 먹고 살까 하는데 아무 것도 못하고 자야 되니까. 이런 어리석은 제도가 어딨나. 우리는 국민의 정신을 완전히 족쇄를 채워서 당연한 것처럼 수십 년을 살았는데 이거 계속하자는 거냐”라고 반박했다. 해외여행 자유화도 마찬가지였다. 정보기관에서 “‘동백림사건’(동베를린간첩단사건)처럼 해외 나가면 북한에 포섭되고 문제가 많다”는 반박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또 그랬다. “국민이 해외에 안 나간다고 국내에서는 간첩사건이 발생 안 하나? 해외에 나가서 포섭됐다고 하자. 들어오면 잡으면 되고 못 잡으면 그만인데 한국의 보안은 잡는 간첩이 훨씬 많다. 자원도 없는 우리가 장사해 먹고 사는 나라인데 여행을 하지 말아라? 이 미친 놈 짓이지. 그런데 제일 반대하는 데가 재무부였다. 담당 국장 불러서 물어보니 ‘딸라’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외화 유입과 유출 중 어디가 많겠느냐“고 물으니까 해답을 못 했다. 그래서 나는 ”들어오는 게 훨씬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국사람이 돈 2천불 들고 미국에 가서 고생해 세탁소나 채소가게에서 돈 벌면 먼저 동생들 데려가서 박사 시키고 하니까. 그걸 국가 장학금으로 감당할 수 있나? 우리는 사람밖에 없는 나라인데 당신들 관료가 책상에 앉아서 그렇게 인재가 양성되는 걸 해결해 줄 수 있나? 그래서 내가 대통령에게 ”가족과 몽땅 이민 가는 경우 10만 불까지 허용해 주자“고 건의해서 실제로 그렇게 딱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렇게 출국은 6명만 했다. 10만불쯤 있으면 국내에서 그냥 편하게 산 것이다.
▲ 연좌제 폐지도 직접 주도했는데.
포항 동향인 이기택 민주당 전 총재가 당시 “남파간첩 출신인 친동생 때문에 연좌제 폐지를 했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동생(허화남·사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일본 친척집에 보내져 공부를 했는데 그 당시에는 일본과 북한의 왕래가 상당히 자유로왔다. 그래서 일본에서 여행을 갔다가 형인 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던 북한에 포섭돼 공작을 받고 남파됐다가 붙잡혀 국가보안법으로 17년 장기 복역했다. 나는 처음부터 동생 사건이 발생한 뒤 예편을 자청했지만 수리가 되지 않았다. 또 당시 이미 권력의 핵심에 있어서 연좌제 피해를 볼 일도 없었다. 그냥 국가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주도민들은 ‘4.3사건’으로 인해 대부분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늦었지만 이들의 울분을 국가가 나서서 풀어줄 때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다.
▲ 저서 ‘이념은 날개가 아니다’를 비롯해 그동안 자유와 보수주의의 가치를 주도적으로 전파해왔는데.
=소련의 해체로 인한 냉전 체제 붕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맑스주의의 패배요, 자유주의의 승리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주장하듯이 동서 냉전 이후에 이념이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자유주의가 대세로 흐르는 시대가 지금이므로 그 깃발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 사상이 없는 국가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모두 헌법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동서 냉전은 끝났다’고 좌파들은 국민을 계속 현혹시킨다. 대한민국은 내부적으로 이념적 분단국가이다. 좌우는 결코 통합되거나 상생할 수 없다. 그건 기만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의 사상 문서인 헌법에 자유민주주의가 명시돼 있지 않은가?
▲ 한국 사회의 이념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더해지는데.
= 최근 김한길 국민의힘 위원장의 조선일보 인터뷰를 봤는데 제목이 ‘윤석열 대통령은 좌우 어느 쪽에도 충성하는 대통령이 아니다’였다. 이는 명백히 틀렸다. 대통령 취임 선서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조항’이 있지 않나. 헌법은 사상문서이니까 대한민국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충성해야 한다. 좌우 통합은 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민주당의 조국이나 송영길은 우파를 벌레처럼 생각한다. 속으로 “야, 이 무식하고 편안한 것밖에 모르는 놈들아”라고 비웃으면서 무시하고 있다. 그들이 우파의 한계를 간파하고 있는 것인데 정신 차려야 한다.
▲ 영화 ‘서울의 봄’을 관람했는지.
= (웃음)지금 대한민국은 “12·12는 쿠데타”라고 해야 “통쾌하다”고 박수 친다. 내가 물을 한 두 번 먹어봤나. 안 봤지만 뻔하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은 반드시 증명되고, 나도 증명할 것이다. 그게 안 되면 증오로 인해 대한민국은 망한다. 재판을 믿는가? 재판의 특성이란 여러 가지다. 국가 권력이 정부를 주장하고, 그 다음에 범죄인의 고소 고발을 받아들여서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이 반란자가 된다. 결국은 좌파들이 군을 완전히 살인 집단으로 만든 것이다.
허화평 이사장은?
1937년 경북 포항 출신으로 포항고교(1957), 육군사관학교 17기(1961)를 졸업하고 국군보안사령부 사령관 비서실장을 거쳐 청와대 정무 제1수석비서관(1982~1983)으로서 5공화국 정부의 개혁을 주도하다가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사건이 발생하자 부패 척결을 이유로 사직했다. 5년간 미국 헤리티지재단 수석연구원을 거쳐 1988년 귀국해 현대사회연구소(현 미래한국재단) 소장과 포항 북구에서 제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고독하지만’ ‘우리 시대 모순과 상식’ ‘이념은 날개가 아니다’ ‘지도력의 위기(1·2)’ ‘한국, 미완의 기적’ 등이 있다. 그는 ‘12·12사태 등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2002년 ‘지도력의 위기(1·2)’의 발간사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혹자는 필자인 내가 민주주의를 억압했던 5공화국 주역으로서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있을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 점에 대하여 어떠한 비판도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며 아울러 5공화국 탄생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자유를 억압받았던 모든 이들에게 유감스럽게 생각하면서 고개 숙여 위로를 바친다. 그러나 5공화국이 조국의 민주주의 대장정을 부인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평화적 정권교체 약속을 지켰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나는 그러한 과거사로 인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실천해야 할 정치적 부채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