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book]'열공'사진기자에 선사된 이미지 권력 감식안

변영욱 저, '사진 속 권력'-디지털시대,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
동아일보 사진부장, 전두환~윤석열 등 28년간 역대 9명 촬영
'대통령 사진' 키워드로 90년대 이후 한국 보도사진 역사 정리
"대통령 곁에 '깜'이 안되는 인물에 대한 실망이 탄핵의 조짐"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승인 2024.12.15 20:44 | 최종 수정 2024.12.16 08:48 의견 0
28년간 역사의 현장을 생생한 취재사진으로 기록해온 동아일보 변영욱 사진부장의 다섯번째 저작 <사진 속 권력>. <사진 제공=한울엠플러스>

권력과 자본의 위력에 도전하는 특종 기사에는 항상 그 가치에 비례하는 위험이 따른다. 경영학이 고안한 'high risk, high profit'(위험이 클 수록 이익도 크다)의 통찰 그대로이다. 정치 권력을 폭로하는 기사에는 압제의 탄압이, 자본 권력을 폭로하는 기사에는 민·형사 소송이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를 무릅쓴 취재기자에게 핍박이 가해지는 사건을 '필화'(筆禍)라고 부르는데 기사를 쓰는 이른바 '펜' 기자에게만 씌워지는 가시관은 아니었다. 한국일보 정범태 사진기자는 1962년 4월 16일자에 강화도 지역 폭력배들에 의해 전등사에 봄나들이 갔던 시민들이 쫒겨 도망가는 사진과 기사를 보도했다가 구속돼 1년간 옥살이를 했다. 박정희 정권의 치안본부가 적용한 혐의는 '반공법과 특례법 3조 위반'이었다.

▲대통령을 통해 들여다본 이미지와 평판 관리

한줄의 기사가 세상을 바꿔놓는 만큼이나 보도사진 한장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갈 수록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변영욱 사진부장이 최근 발간한 '사진 속 권력'은 '디지털시대,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라는 부제를 붙여놓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도사진으로 본 매스미디어론'이나 마찬가지이다. 책의 표지 맨위에 'The President's Visage'(대통령의 얼굴)라고 책의 핵심을 정리해놓은 듯 하지만 오히려 발간 의도는 이어져 인쇄돼 있는 'Image politics in the Digital Age'(디지털 시대의 이미지 정치학)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문에서 기사보다 쉽게 읽히는 게 보도사진의 장점이지만 이를 언론과 정치권력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모티브로 삼으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출판사는 '전직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가 해설하는 대통령 사진 이야기'라는 홍보문구로 독자의 눈길을 잡으려 한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저자는 대통령을 사진과 이미지, 그리고 권력의 상관관계를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에 또다시 6년만에 탄핵의 광풍을 몰아온 절묘한 시기를 저자가 미리 예측이라도 한듯 책이 발간된 시점도 28년 경력 베테랑 사진기자의 경륜과 성실함에 대한 포상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좀 성급하지만 저자가 결론 내린 좋은 대통령 사진이란 무엇일까? 뻔한 답이 예정된 듯 했지만 그는 '카메라를 견딜 힘'을 먼저 제시했다. 과거의 대통령은 (사진)기자들의 접근을 제약하거나 선별적 허용을 통해 이미지를 관리했지만 이제는 '빈정거림'의 대상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전제군주 시절 왕의 '어진'(御眞)을 그리는 '화원'(畵員)이 그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무한대의 콘텐츠가 생산되는 디지털 시대에서는 대통령의 영상과 사진도 비아냥거림과 비틀기의 수모를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대중의 방종까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성숙한 시민들이 그런 콘텐츠를 걸러낸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literacy, 문해력)를 갖출 것'을 주문했다.(232쪽)

이를 전제로 한 저자의 결론은 진정성이다. 가식과 연출을 영악하게 파악해버리는 대중들에게 이제 멋진 미장센, 얼굴 메이크업과 동작은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정체성에 맞는 이미지가 국민의 호응을 얻는다고도 했다. 미국식의 대통령 이미지 메이킹이 아니라 '평판(reputation) 관리'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앞선 연구 결과에 변영욱은 공감을 표했다. 이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깨달음에 독자들은 이르게 된다.

▲사진을 통해 본 대통령 탄핵의 조짐들

앞에서 언급한 '사진 속 권력' 발간 시점의 놀라운 시의성은 탄핵을 부른 대통령들에게서 보인 공통적 조짐을 거론한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변영욱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는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국내 일정 취재를 2년여간 하고, 해외순방을 연속 10여 회 동행해본 경험으로 '놀랍도록 팽팽한 피부'를 포착했다. 그는 대통령이 외모에 신경쓸 경우 문제는 정책 참모 이외에 외모 담당들이 최측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적인 평가임을 전제했지만 "역사 상 탄핵의 시작은 '깜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 옆에 있었다'는 지지층의 실망이었다"고 통찰했다. 최순실이 대통령에게 젊어 보이는 시술을 제공할 사람과 의상을 공급함으로써 자신의 공간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에 대해서도 분석했지만 부인의 사진 한장에 내포된 위험성에 대해서도 예리한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2023년 김건희 여사가 순천 정원박람회에서 관람용 카트를 타고 가다가 뒤를 돌아보는 독사진은 적지 않은 논란이 됐다. 대통령실이 제공한 이 사진은 사진기자로서 보기에도 구도와 배경 정리, 빛과 표정 등에서 완벽한 사진이었다는 것이다. 사진 자체로는 '인생 숏'이라 할 만큼 훌륭했다고 했다. 하지만 변영욱은 개인 소장용으로 충분했을 사진을 왜 대통령실이 공개했느냐는 당시의 비판을 다시 소환했다. 2024년 겨울 대한민국을 또 다시 혼란에 몰아놓고 있는 탄핵의 광풍이 어디에서 첫 싹이 틔워졌는가를 반추하면 저자의 통찰이 빈정거림이나 비틀기의 의도가 아님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박근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그 옆'의 공식을 대입하면 변영욱의 28년 사진기자 경력이 어떤 통찰력을 갖게 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용산이 초래한 윤석열 대통령의 홍보 약점

저자는 '4장, 역대 대통령들의 시각적 아이덴티티 관리'에서 최고권력자들의 보도사진과 언론 정책을 통해 민주주의의 변천사를 들여다봤다.

'이승만 대통령-사진기자들이 대통령을 직접 사진 찍던 시절', '박정희 대통령-왜 육영수 여사 피격 사진은 한 사람만 찍을 수 있었을까?' '전두환 대통령-많은 양의 사진을 배포한 군인 출신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웃기 시작한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사진기자를 가장 많이 이용한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카메라보다는 일에 집중했던 대통령'의 방식으로 정체성을 요약했다. 이 가운데 언론 홍보의 기술과 효과 측면에서 가장 후한 점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줬다.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탁 아무개를 인용해 재임 동안 국내 퍼포먼스만 최소 1195번 연출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행사였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는 '홍보 자원 부족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 위의 대통령'이라고 요약했다. 진보는 카메라와 사진을 중시한다고 전제하면서. 저자는 소비에트에서 발달한 선전선동론을 굳이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문재인 정부의 홍보 중시 전략과 비결의 한 단면을 보여줬다. 이에 비해 윤 대통령의 홍보는 태생적으로 빈약했다. '대체로 진보에 비해 보수는 카메라를 이용하려 하지 않았다'고도 전제했다. '홍보와 연출을 담당하는 인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 쪽 인력풀에서 출발하다 보니 홍보 전략과 대중과의 실질적 소통 과정에서 전임 대통령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이 같은 내부 역량의 차이에 더해 청와대와 비교해 용산이라는 공간의 협소함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했다. 용산에 비해 청와대 내부는 넓고 천장이 높아 촬영에도 유리하며 다양하면서 깔끔한 사진을 만들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용산에서 열린 회의가 시각적으로 세련된 이미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사진기자들의 분석을 저자는 충실히 전달했다.

▲광장의 핍박을 공부로 극복한 사진기자의 힘

필자가 지역 종합일간신문에서 일하던 2007년 여름은 광우병 촛불집회 시위가 서울 한복판에서 연일 몰아쳤다. 대학 학보사에서 선후배로 만나 이른바 서울의 메이저 언론사 사진부 기자로 일하는 후배가 '폭염 취재'를 위해 대구경북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연락을 해왔다. 중앙지 취재 기자들에게 일분 일초가 아까운 시국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항에 들러 간만에 선후배의 회포나 풀겸 하루 묵어가라는 제안과 수락이 오갔다.

소주가 몇순배 돌고 나서야 후배는 출장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촛불 광장에서 폭도로 돌변한 군중에게 위험천만한 핍박을 당하고, 죽음의 공포 속에 광화문에 위치한 신문사의 로비에 겨우 뛰어들어 정신을 잃었다는 신문기사 속 사진기자가 바로 그였다. 며칠을 입원한 뒤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서너사람이 모인 일행만 봐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후배에게 선배기자들은 폭염 취재 지시로 배려를 했던 것이다.

이후 필자가 2018년 9월 이후 서울의 신문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는 후배와 전에 비해 얼굴을 접할 일이 더 늘었다. 그때마다 나는 몇번이나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지만 결국 한번도 할 수가 없었다. 천성이 별로 신중하지 않은 편이지만 자제하기를 잘 했다는 판단이 이제야 든다. 새책 '사진 속 권력'의 프롤로그에서 나는 그 대답을 찾았다. '1. 시민들이 사진을 피하기 시작했다'에서 저자는 외신기자조차 혀를 내두르는 우리 국민의 초상권 의식을 강조하며 책을 시작했다. 세계 어느 신문에서도 우리나라처럼 많은 모자이크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면서. '시위를 위해 거리로 나선 사람조차 초상권을 주장한다'는 부분에서 그가 자신의 끔찍한 경험을 이제는 응시할 수 있음이 느껴졌다. 인간적 성숙에 대한 대견함과 함께 감사함도 밀려왔다.

소위 '장비빨'이 중요한 사진기자의 세계에 도전하러 실기시험을 보러 가면서 사진학과 출신도 아닌 주제에 대학 학보사의 허접한 '미놀타카메라'를 달랑달랑 들고간 그가 이제 사진기자 30년을 앞두고 있다. 그 카메라를 빌려준 데 오래 감사했는지 앞머리의 '책을 펴내며'를 마치 에필로그로 쓰듯이 여러 인연들에 대한 경의로 채워놓았다. 인천에서 중·고교를 나와 대학생활 대부분을 영자신문 The Sungkyun Times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신경을 썼지만 투박한 문체도 만나실 수 있다'는 겸사도 잊지 않았다. '현장을 뛰어다니는 사진기자의 글이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노련한 '펜' 기자의 실력보다도 더 적확했으며 세심하게 구사됐다.

변영욱은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 석사를, 모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진기자 업무만으로도 벅찼을텐데 '김정일 JPG : 이미지의 독점'(2008), '김정은 JPG : 북한 이미지 정치 엿보기'(2015), '시진핑 JPG : 이미지 굴기'(2018), '브랜드 평판 혁신설계'(공저, 2020)를 펴냈고 이번 책은 다섯번째이다. 공부하는 사진기자 후배를 둔 자부심이 새로운 언론학자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뀌면서 비상계엄과 탄핵의 겨울 공화국, 촛불 속에 대선캠페인의 정략이 어른거리는 대한민국을 또다시 겪어야 하는 상심이 조금은 걷히는 느낌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프롤로그

Chap.1사진과 정치

1. ‘진짜를 기록’했다는 신화가 담긴 사진/ 2. 사진은 누군가가 선택한 결과다/ 3. 시각이 정치가 되는 이유/ 4. 사진이 필요해진 정치인, 그러나 사진기자는 필요 없어진 정치인/ 5.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대통령의 사진

Chap.2대통령 사진의 역할과 기능

1. 대통령 사진은 역사의 기록이다/ 2. 그림을 만드는 것도, 만들지 않는 것도 외교다/ 3. 사진은 국가의 위기에서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할 수 있다/ 4. 대통령이 ‘뜨면’ 의제설정 효과가 발생한다./ 5. ‘포옹’과 ‘어퍼컷’

Chap.3대통령 사진의 형식과 출처

1. 대통령 사진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2. 처음 해보는 대통령, 두 번째 해보는 참모들/ 3. ‘어공’ 전속 vs ‘늘공’ 전속/ 4. 대통령실 출입 사진기자단/ 5. 대통령실 출입 사진기자단의 역사/ 6. 대통령실 출입 사진기자단의 역사/ 7. 전속과 출입 사진기자들의 갈등/ 8. 이미지를 직접 결정할 권리/ 9. 제공 사진에 대한 사진+기자와 청와대 참모의 인식 차이

Chap.4역대 대통령들의 시각적 아이덴티티 관리

1. 전근대 시대 권력자들/ 2. 이승만 대통령/ 3. 박정희 대통령/ 4. 전두환 대통령/ 5. 노태우 대통령/ 6. 김영삼 대통령/ 7. 김대중 대통령/ 8. 노무현 대통령/ 9. 이명박 대통령/ 10. 박근혜 대통령/ 11. 문재인 대통령/ 12. 윤석열 대통령

Chap.5대통령 사진 취재의 실제

[국내 행사 취재] 1. 풀 취재 원칙과 실제 현장/ 2. 국내 풀단의 취재와 운영/ 3. 기본 풀단 운영/ 4. 마감/ 5. 국내 행사의 시나리오

[해외 풀단 취재] 1. 대통령 연설과 텔레프롬프터/ 2. 대통령 전용 1호기/ 3. 누가 대통령을 ‘탤런트’로 만드는가?/ 4. 대통령 사진은 검열을 받을까?/ 5. 사진기자에게 드레스 코드가 있을까?

Chap.6외국의 대통령 사진 취재 사례

1. 미국에서 시작된 대통령의 이미지 정치/ 2. 한국 기자단의 모태가 된 미국 백악관 출입 사진기자 제도/ 3. 미국에서도 목격되는 기자들과 공무원의 갈등/ 4.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투명성/ 5. 중국의 수행 기자 제도와 북한의 1호 사진가/ 6. 인상적인 미국 포토매니저의 섬세함

Chap.7키워드로 본 우리나라 대통령 사진의 특징

1. 가족사진/ 2. 영부인 사진에도 논리가 필요하다/ 3. 사진 촬영 기회/ 4. 어린이 사진/ 5. 독재자를 우러러 보는 사진/ 6. 대통령의 머리색/ 7. 아직 함부로 얼굴을 자르진 않는다/ 8. 사진에는 국적이 있다/ 9. 가운데 자리에 대한 집착

Chap.8변화된 환경, 대통령 사진의 미래

1. 캄보디아 아동의 사진에는 조명을 쓴 것일까?/ 2. 대통령 사진을 방해하는 노이즈 요소/ 3.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 범인이다/ 4. 디지털의 습격/ 5. 대통령 사진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6. 우리 편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라/ 7. 비판과 조롱을 견뎌야 하는 영상 시대/ 8. 사진의 출처와 독자의 신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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