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서명수씨(61)는 '지역 메이저'로 불리는 신문사에서 오랜 기간 국회 정치부장을 지내던 10여년전 홀연 본업을 훌훌 털고 안동으로 이주해 직접 팔을 걷어붙여 가축사료 첨가제를 만드는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EBS 인기프로그램으로 매주 4회씩 1편로 구성된 '세계테마기행'에 모두 4편 출연할 만큼 중국 전문가로서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도 맡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에서 공부한 실력을 바탕으로 <지금, 차이나>(’20), <충칭의 붉은 봄>(’21) 등 대륙의 근현대사와 시사 관련 책도 여러 권 펴냈다.
하지만 시사교양 TV에서 얼핏얼핏 보였듯 서명수의 시각은 묵직하고 거창한 주제보다는 중국대륙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문화와 생활상에 맞춰져 있음을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다. <산시, 석탄국수>(’14)에서는 지역마다 처한 환경과 사람들의 형편에 맞춰 '빈부귀천'으로 내려져 온 다양한 면류를 소개하고 있는데 책에서 밝힌 대로 맛 전문가로서 가장 애호하는 음식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 제1 야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를 '웃기는 짬뽕'으로 간단히 규정해버린 정치비평서를 펴냈다. 책 제목 <그의 운명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은 앞선 '유시민의 책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의 패러디'라고 저자는 밝혔다.
출구 없는 암울한 한국 정치사회의 터널을 더 길고 뜨겁게 한 2024년 여름. 그 한 가운데서 7월 탈고를 하고 8월말 출판된 신간(新刊)을 구입해 계절이 바뀐 10월이 돼서야 결국 '구간(舊刊) 서평'을 쓰게 된 데는 속사정이 있다. 책의 내용은 잡자 마자 단숨에 완독할 수 있는 만큼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다. 중학교 학력 독자의 수준을 기준으로 삼으라고 배운 오랜 신문 기사 작성의 결과이다. 법조 출입이 아닌 주로 정치부 경력인데도 이재명 대표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주요 범죄 혐의와 죄명, 법리 해석에 대한 정리도 간결 명료하다.
'1장, 그의 운명'에는 '현재 11개 혐의, 4건의 재판 가운데 ▲대장동, 백현동, 위례신도시, 성남 FC불법후원금 의혹 등 성남시장 시절의 재개발사업과 택지개발 등의 특혜와 비리 혐의는 서울중앙지법에서 병합돼서 하나의 재판이 2년째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과 김용, 유동규 그리고 대장동업자들인 김만배와 남욱, 백현동 로비스트 김인섭 등 이재명의 측근과 비리 관련자들 대부분이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저자는 그간의 법조계와 언론 분석대로 '이들 사건은 다음 대선 전에 종결되기 장담하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재명 대표가 선거방송토론 중 대장동 사업 핵심실무자인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을 '모른다'고 답해서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2002년 분당파크뷰사건 관련 '검사사칭사건'에 대한 위증교사 재판 ▲'국토부 협박으로 백현동 4단계 용도변경을 해줬다'는 허위사실 공표 혐의 재판이 10월 1심 재판 선고가 가능해졌다. 10월은 이재명의 운명을 가를 순간이 될 수도 있다"고 봤는데 지난 8말9초 책 발간 후 11월 15일과 25일로 날짜가 잡혔다.
책 제목 <그의 운명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생각>의 핵심은 이 부분에 요약돼 있다. 오히려 전체 책의 지면 할애는 그의 운명에 대해서 보다는, 그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변적 요소에 대해 더 많이 돼 있다. 바로 유시민과 조국, 그리고 이 대표가 매우 불편해 할 자신을 둘러싼 구리고, 지저분한 일들이다.
저자는 책에서 '현실 자각 타임'의 의미라는 MZ 세대 신조어 '현타'를 10여차례 이상 언급하고 있다. "10월(발간 후 11월 예정)이 돼 이 대표의 대선행을 좌절케할 수 있는 1심 판결이 나면 그 자신은 물론 '개딸들'이 '현타'를 경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2장, 그의 요설'에서 저자는 대통령의 사면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대표의 위기 돌파 전략인 ‘탄핵과 조기대선 시나리오’를 직격하고 있다. 또 기획의 연출가를 유시민으로 규정하고 그가 발언과 기고를 통해 ‘요설’을 넘어 나치스 선전상 괴벨스의 수준으로 전락한데 대해 비판하고 그의 실체와 음모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국회의원으로 기사회생한 ‘강남좌파’ 조국조차 유시민과 함께 이대표의 왼편, 오른편을 맡고 있는 듯 하지만 유시민에는 비할 수 없는 가치 존재에 불과함을 강조해놓았다. 조국 스스로 ‘감옥에서 몸이나 만들겠다’며 구속이 확실한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민주당과 개딸들이 ‘아버지’ 이재명과 조국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직면해 ‘현타’를 맞을지라도 2년 8개월 전처럼 탄핵과 조기 대선의 묵은 시나리오가 ‘60이 넘으면 썩는 두뇌의 생체 실험자’ 유시민에서 재시도된다는 '현타 부정 시도'의 암시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이재명의 범죄 혐의와 그 주변 2명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만들어 가는 운명에 덧붙여 기자 출신답게 그가 과연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결코 간과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민망한 일들을 다시 정리해 놓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이 대표가 ‘도박으로 가사를 탕진하고 성남으로 야반도주했다’고 밝힌 아버지는 “‘엽연초 총대’로서 동네 이웃들의 담배 재배 수매 대금을 횡령하고 잠적해 이재명 검사시보 시절 마을대표들이 안동지청을 방문해 변제를 요청했다’는 안동 출신 후배 기자의 취재로 반박했다.
‘재명이’ 스캔들의 김부선도 다시 등장시켰다. 2021년 SNS에서 그녀는 “(2002년)‘검사 사칭 혐의로 수배 생활 때 20대 미혼여성 집에서 아주 즐거운 도피생활을 했다’고 자랑했다”며 모종의 폭로를 한 바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취재해 보도한 기자를 명예훼손 고발을 한 사람은 폭로 내용과 시·공의 궤적이 비슷한 이재명 국회의원실 김현지 보좌관이다. 저자는 또다른 여성으로서 이 대표의 불법 재산 은닉 공모자로 지목되는, 경기도청 ‘법카’ 불법유용 사건의 유죄 확정 피고 배소현(전 5급 별정직) 등이 정진상 등과 함께 이 대표를 중심으로 엮인 인연을 그의 대선 운명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의 제3열에 세워놓았다.
앞에서 밝혔듯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정치평론서의 서평을 한참만에 마침표 찍게 된 이유는 작가로서 저자의 운명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책 발간의 의도대로라면 서평은 응당 한국사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중요한 타개책인 대통령 후보의 도덕성과 총체적 자질에 대한 숙고여야만 했지만 주객이 뒤바뀌는 딜레마에 갇혀 버렸다. 당대 최고 수준으로 손꼽히는 시사만평 작가로서 삽화를 맡은 김경수 화백이 책의 서문에서 밝힌 대로 ‘국가폭력을 증오하며 목숨 걸고 투쟁하던 양심 있는 척 하던 세력들이 정작 자신들을 비판하는 만평 한 컷에 집요하게 살인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내로남불의 괴물로 변신해 버렸다’는 토로를 넘어선 절규가 펼쳐놓은 책장과 노트북 화면에 줄곧 어른거렸다.
이 글이 간판을 ‘人-book’으로 정한 이유는 책뿐만 아니라 그 지은이도 나란히 살펴 두 주체 속에 담긴 고갱이를 독자와 함께 나누자는 뜻에 있다. 정치부 기자 출신인 그에게 정치평론서는 분명 벅찬 책이 아니다. 하지만 반도에서 대륙을 가끔 오가며 사람과 세상 얘기, 멋과 맛 얘기를 이어가야 할 한 인문주의자의 운명이 삿된 가짜 민주주의자들을 고발하는 책으로 인해 험난하고 볼썽사나운 또 다른 운명을 맞을까 걱정하는 현실은 참으로 개탄스럽다. 총칼 없는 전쟁이나 다를 바 없는 삭막한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에서는 인문주의(자)도 징발(집)의 대상이다.
저작권자 ⓒ 뉴스포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