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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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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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청년 조국이 가담한 사노맹의 기관지 ‘노동해방문학’(노해문)의 기치는 ‘노동자 계급의 당파성’이었다. 87년 민주항쟁과 6.29선언에 이어 ‘노동자 대투쟁’의 시기를 맞아 발간된 이 잡지는 사노맹의 결성만큼이나 학생운동권에 충격을 줬다.
특히 'PD'(민중민주) 계열 대학생들은 노해문을 읽으며 ‘학출’(대학생 출신)로서 ‘노출’(노동자 출신)의 당파성에 다가가지 못하는 계급적 한계를 고민하기도 했다. 조직활동에 가담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쓴 소주를 마시며 선후배들과 나눴던 그 시절의 당파성 고민을 최근 며칠 동안 30여년만에 불러내봤다. 가두에서 6.10민주항쟁의 역사적 현장을 직접 경험한 386세대로서 이번 조국 장관 임명 파동은 이런저런 성찰의 계기가 됐다.
학자 아닌 장관 조국에 대한 호불호, 그의 임명과 사퇴에 대한 찬반의 판단을 해치는 가장 큰 장애물은 정치와 언론이다. 지금 한국에서 이 둘은 대부분 대중에게 정파적 입장을 부추겨 여론조사와 집회 참가자의 수치를 더하고 빼는 기제로 삼는데 몰두하고 있다. 특히 답답한 여당의 입장에서는 이런 싸늘한 지적이 언짢겠지만 언론 대부분이 장애물이라는데 대해서는 속이 후련할 것이다. 선출직 공무원도 아닌 장관 조국의 적합성 여부가 여론조사결과에 좌우될 것 같은 현실에도 불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불편한 수치의 딜레마는 민주당도 자초하고 있다. 9월 28일의 검찰 개혁 촉구 집회 참가인원수를 200만명이라고 홍보한 것처럼.
검찰의 개혁,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주말 저녁 강남의 대로를 가득 채웠던 검찰 개혁 촉구 목소리는 강자와 약자 중 어느 쪽의 것일까? 아마 강자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무소불위의 한국 검찰 앞에서 피의자 신분은 특히나 더 약자이다. 아마 조국 장관도 검찰 수사 진척에 따라 수시로 피의사실이 언론에 유포되는 상황은 그의 말대로 ‘공개수사를 당하는 국민의 입장’처럼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약자의 피해 호소와 개선 요구는 사회로부터 지지와 동력을 얻는다. 지금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찰 권력에 공식 경고 발언을 하고 촛불의 주역들이 이제 검찰청사 주변에 광장을 옮겨올 채비를 하고 있다.
조국 장관의 수사를 맞닥뜨려 검찰 개혁이라는 무거운 수레바퀴를 마침내 굴려내려면 기소 후 공개법정에서 검찰이 과연 별건수사, 무리한 수사를 했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게 해야 한다. 검찰을 비롯해 어느 권력과 성역에도 두려움이 없던 바보 노무현을 잃고도 아직도 검찰을 모르는가. 검찰 자신의 권력보다 더 가공할만한, 지구상의 바퀴벌레같은 그들의 생존능력이 대통령 중심제의 허점을 간파한 데서 비롯됐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법무부장관에 대한 수사를 적당히 일보 후퇴하고 대통령을 정조준해 이보전진을 노리는 시나리오를 벌써부터 만지작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조국 장관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는 드라마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는 지적재능과 도덕성, 소신을 바탕으로 SNS를 활용해 얻은 사회적 명성과 기대의 높이 만큼 자신과 가족은 물론 민주사회진영에 까지 깊은 골을 남기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엄중한데도 압수수색 검사와의 전화통화, 대기업 총수를 위한 탄원서 작성 등 아슬아슬한 돌발변수에 대해 법무부장관으로서 '인륜'을 내세운 해명은 안일한 현실인식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당쟁의 세력 균형을 위해 자식을 뒤주에 가둬 대못질을 한 어느 군주는 한낱 왕조시대의 옛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민주사회진영의 가장 큰 무기는 도덕성이다. '역사는 우리의 편'이라는 당당한 믿음 뒤에는 항일민족투쟁과 분단극복의 맥을 잇고 민주화를 쟁취한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검찰 개혁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가치의 중심인 국가 개혁이다. 조국 장관이 검찰 개혁을 통해 국가 개혁의 한 임무를 담당케 하려면 추상 같은 도덕적 우월성이 담보돼야 한다. 범민주사회는 조국(祖國) 개혁을 위해 조국 장관이 부족하다면 그도 개혁할 수 있다는 결기로 재무장해야 한다. 역사의 거친 광야를 거쳐온 그 초심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정세는 사면초가나 마찬가지다. 맹장 한명을 잃는다면 불타는 강 건너에 수구보수세력의 조롱과 레임덕, 정권 재창출 실패의 위기가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이 바로 민주사회진영이 촛불정신의 정체성을 재점검하고 긴장을 곧추세울 적기이다.
1987년 민주항쟁의 거리거리에서 불렀던 '그날이 오면'의 가사처럼 '정의의 물결 넘치는 꿈'은 아직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민주사회진영에게 지금은 고 문익환 목사가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한명한명 목 놓아 호명했던 민주열사들의 이름 앞에서 조국 개혁과 민주화의 완성을 이뤄내기 위해 조국도 하나의 밀알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칼럼은 2019년 10월 게재된 <폴리뉴스>와의 협의 아래 전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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