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이슈]블랙스완 박원순과 위험한 ‘광역’권력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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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07:08 | 최종 수정 2024.02.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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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화원 점거사건)항소심 변론요지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초를 잡고 우리가 논평을 해서 보완을 한 것이지요. 말씀대로 박원순 변호사는 그때 30대 초반의 연부역강(나이는 젊고 힘은 센)한 변호사였는데 이 시기부터 우리와 함께 인권변호사 대열에 합류했어요. 내가 기억하기로는 이 사건 변론요지서가 박원순의 데뷔작이에요. 나중에 부천서성고문, 한국민중사, 보도지침, 구로 동맹파업 등 많은 사건에서 우리와 함께 한 청년변호사의 등장을 이 사건에서 보여줍니다.’
한국의 인권변호사 1세대 홍성우 변호사가 70~80년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활동을 대담형식으로 구술해 2011년 펴낸 ‘인권변론 한시대’에 새겨진 고 박원순의 삶의 한 지문이다. 서울시장 박원순의 실종과 사망 소식이 마치 세상에 도저히 생겨날 수 없는 ‘블랙스완’(검은 백조)의 충격으로 내게 다가온 건 활자 속 정보가 아니라 그와 만난 몇 번의 기억 때문이었다.
1999년 NGO세계대회에서 ‘참여연대’의 자격으로 참석한 그를 처음 만난 인상은 오래 입어 닳을대로 닳은 양복 윗주머니의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 있다. 몇 년 뒤 한 지방도시에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재회한 그는 백팩을 매고 간사 몇 명과 좁은 승합차를 탄 채 강소기업 대표를 인터뷰하기 위해 전국을 강행군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한참을 지난 지난해 집무실에서 만난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 출신의 박원순 3선 서울시장은 세련된 모습이 돼 예의 그 친절함으로 그간의 안부를 물어왔다.
퇴근 시간을 앞둔 무렵, 처음 기자들의 단톡방에서 ‘서울시장 현재 연락 두절이라며 시청기자들이 분주’라는 메시지를 봤을 때 직관적으로 단순 해프닝에 그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기가 힘들 거라는 불안한 예감에 이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을 수도 있는 불명예스런 혐의에 대한 의문이 이어졌다. 대선 과정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부정한 돈의 유혹에 걸려 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에 무게가 기울었다.
결과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충격적인 폭로와 보도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한때 믿었거나, 믿고 있는 박원순의 세계는 마치 세입자가 방을 빼듯 싹싹 비워져갔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시민운동가가 아닌 정치인 박원순은 어딘가 아마추어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한 여름의 옥탑방 이벤트는 그 정점에 있었다. 그에게 어울리는 정장은 세련된 슬림핏이 아니라 닳고 헤진 주머니 차림이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 고 노무현이 유시민에게 건넨 ‘정치 하지 말라’는 충고는 박원순이 더 귀 담아 들었어야 했다는 원망이 들 정도였다. 반생을 인권변호사와 시민운동가로서 공공선의 삶을 실천해온 박원순의 정치 도전 또는 실험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를 파국으로 몰고 간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몸가짐을 소홀히 한 자신에게 있겠지만 광역단체장에게 주어진 권력이 과연 적정한지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광역단체는 기초단체와 정부를 연결하는 국비 예산의 통로이며 도지사와 광역시장은 온갖 산하기관장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권한의 과잉은 권력의 과잉을 낳고 단체장은 그것이 마치 사유물인양 착각하기 쉬운 위험성이 있다. 직원 성추행 사건이 유독 광역단체장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얼마나 황제와 같은 대우를 받아왔으면 민선 7기 영남권의 한 단체장은 웃지 못할 현장을 출입기자에게 들키기까지 했다. 그는 업무 시간에 시간을 정해 대중사우나를 이용한 다음 검색대를 통과하는 자세를 취한 채 비서들이 전신을 타월로 닦게 하고 세탁소에서 찾아온 새 정장도 대신 입히게 했다. 피해 여비서에 의해 알려진 박원순 시장의 집무실 내부와 성추행의 정황들은 한국의 권력사회, 특히 광역단체장의 권력 기형 실태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온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기대를 받던 고 박원순 서울시장. 그는 조롱과 멸시 속에 온갖 굴종을 감내하며 검찰 조사를 당해냈던 고 노무현과 달리 어떤 사과의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세상을 등졌다. 그가 사회와 자신의 가족에게 남긴 과오로 따지자면 조사(弔辭)조차 망설여진다. 정치가로서 세상을 위해 품은 꿈을 이루지 못 하더라도 그냥 ‘원순씨’로 국민의 가슴 속에 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시네마천국’ ‘미션’ 등 최고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그보다 며칠전 망자가 된 이탈리아의 엔니오 모리코네가 직접 쓴 부고는 감동과 안타까움이 더 교차한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사망했다. 나의 부고를 늘 가깝게 지냈던 모든 친구들과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모든 이들에게 전한다. 깊은 애정을 담아 인사한다. (중략) 마지막으로 누구보다 소중한 아내 Maria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으나 이제는 포기해야만 하는 특별한 사랑을 다시 전합니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마음이 아픕니다.’
*이 칼럼은 2020년 7월 게재된 <폴리뉴스>와의 협의 아래 전재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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