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리우자와 다케오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초청 포항 특별강연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주성균 기자>
"'우리 민족의 시작은 위대했다'와 같은 주장을 내세우면 모든 나라가 자기에게 유리한 역사관을 가지기 때문에 그들의 시각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고대나 중세가 그저 '옛날이야기'로 무시되면 안 되며, 그 시대의 정확한 역사연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의 러시아 중세사 연구 1세대로서 세계적 석학으로 인정 받는 쿠리우자와 다케오(栗生澤 猛夫·81) 일본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 초청 포항시민 특별강연이 큰 관심과 참여 속에 마무리됐다.
뉴스포레가 주최하고 (주)라인세븐이 후원한 '환동해 이웃 포항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를 생각한다' 주제의 이번 특강은 7일 오후 3시 포항시립 포은중앙도서관에서 열렸다.
행사에는 이대공 (사)애린복지재단 이사장과 이상모 포항시문화재단 이사장, 배용재 변호사 등 주요 인사와 교수, 공무원, 대학생 등 국내는 물론 '동북아지방정부연합'(NEAR) 사무국에서 아나스타시아 선임연구원 등 러시아와 일본 측 관계자 및 외국인유학생도 참석했다.
인사말을 통해 임재현 뉴스포레 발행인은 "제자의 초청이 계기가 된 일본 노석학의 포항 방문이 여행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의 과거에서 미래를 모색하는 한·일 양국 간 인문학 교류의 장이 됐다"면서 "특히 교수님의 고향 모리오카시와 포항이 지진 피해를 입은 지방도시라는 점에서도 동질성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푸틴 역사관, 과거 일본의 역사 강요와 비슷
쿠리우자와 교수는 특강에서 이날 주제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고, 두 나라 간의 우열을 주장하는 것은 과거 일본이 한국에 강요한 역사인식과 같아 부끄럽고 잘못됐다고 규정했다.
주제 발표 중인 쿠리우자와 다케오 교수와 동시통역을 맡은 김민섭 대표. <사진= 주성균 기자>
쿠리우자와 교수는 구체적으로 2021년 7월 푸틴 대통령 명의의 논문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의 역사적 일체성에 대하여'를 언급, 이번 침공의 배경과 역사관의 연관성을 주목했다.
특히 자신들의 독자적 정체성과 독립성을 주장해온 우크라이나 역사학의 입장을 서구와 일본 학계가 외면해온 현실에서 자신부터 역사인식을 바로 잡기 위해 2024년에 '키예프-루시 고(考)'를 집필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키예프·루시’란 9세기부터 13세기 초까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키예프/키이우)를 중심으로 존재한 국가"라며 "오랫동안 아무 의심 없이 '키예프·러시아'라고 불러왔지만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며 정확한 명칭은 ‘키예프·루시’"라고 규정했다.
▲러시아, 문화예술과 우주공학 등 여전히 중요
쿠리우자와 다케오 교수는 이 같은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회고하며, 러시아는 적과 동맹의 차원을 넘어 여전히 중요한 요소가 많다고 언급했다.
그는 "바로 러시아 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 우주공학 등 여러 분야에 대한 강한 관심과 동경"을 예로 들며 "대학에서 경제학이 전공이었지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문학에 빠져 학문의 길로 이어지게 됐다"고 술회했다.
쿠리우자와 교수는 "당시 러시아사 연구자 대부분은 혁명사나 현대사(소비에트사)를 주제로 삼았지만, (자신은)그 정신적 기반을 이해하지 않고는 실체를 진정으로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세사 이전을 연구했다"고 밝혔다.
60년을 한 분야 연구에만 몰두해온 그의 학문적 노정에 대한 솔직한 소회도 관심을 끌었다.
쿠리우자와 교수는 "홋카이도대 정년퇴직 후 ‘대기만성형’이라기보다 ‘소기만성형’의 성과를 이뤘다"면서 "교수 재직 때는 교육과 행정에 대한 성과의 강박감이 커서 연구가 그다지 즐겁지 않았지만, 퇴직 후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유롭게 연구하게 돼 오히려 더 생산적으로 됐다"고 밝혔다.
이어 퇴직 후 '그림으로 보는 러시아의 역사'(2010), '러시아 원초연대기 읽기'(2015), '이반 뇌제의 그림연대기집'(2019), '〈그림연대기집〉이 그린 알렉산드르 네프스키와 그 시대'(2022), '키예프 루시 고(考)'(2024)를 출간하고 '이반 뇌제와 쿠르프스키 공의 서간집'을 연말 혹은 내년 초 출간한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침략에 대해 깊이 반성"
이어진 '질의 응답'은 임재현 발행인과 동시통역을 맡은 한동대 도형기 명예교수의 진행으로 이뤄졌다.
(왼쪽부터)쿠리우자와 교수, 도형기 교수, 임재현 발행인. <사진= 주성균기자>
쿠리우자와 교수는 한일 관계에 대한 전반적 인식을 묻는 질문에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끼친 일본의 과거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푸틴과 러시아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침략과 독재가 이어진다면 모두 암담하다고 본다"고 가감 없는 입장을 표현했다.
일본인으로서 보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는 "일본과 달리 매우 역동적이고, 솔직하며,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이어진 국내·외 참석자들의 질문에 대해 쿠리우자와 다케오 교수는 소신을 드러내는 직설적 표현에 더해 민감한 양국 현안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적 입장을 섞어가며 시종일관 유연하고 진지한 태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한편 부인을 동반한 쿠리우자와 다케오 교수의 이번 방한과 행사 개최는 포항 출신의 제자 김민섭 (주)세븐라인 대표의 초청과 강연회 제안이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