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보는이슈]'철강도시' 광양, 당진, 그리고 포항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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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9 07:16 | 최종 수정 2024.02.29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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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늦은 봄 충남 당진시에서 열린 시민토론회에 토론자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주제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와 지역사회의 환경 분쟁 및 지역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필자는 당시 포스코 제철소가 위치한 포항에 본사를 둔 언론인이자 시민단체 일원의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다. 그날 행사의 목적은 당진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철강업 선배도시인 포항지역사회가 포스코와 공해 문제는 물론 지역협력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벤치마킹하려는 것이었다.
당시 현대제철은 한보철강에서 인수한 당진제철소의 중국산 저가 설비와 이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로 큰 갈등을 빚고 있었다. 토론회에 배포된 자료집에 실린 제철소 주변 배추밭의 철강 분진 사진은 포항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적잖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날 더 놀라웠던 것은 당진의 지역사회가 성장동력 기업과 관련된 최대 현안에 대해 분열되지 않고 대체로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통상 시민사회단체가 주최하는 행사에 지방자치단체장은 눈도장과 축사 수준의 참여도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충남도가 작성한 현황자료는 시민단체의 것을 방풀케할만큼 구체적이었으며 당진시장의 축사는 격문을 연상케할 만큼 결연했다. 벤치마킹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철강업 선발도시의 경험을 전하기 위해 참석했던 입장은 행사가 끝날 즈음에는 그 도시에 대한 희망과 부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물론 그 후에도 현대제철과 당진지역사회는 크고 작은 갈등을 거듭했으나 환경과 지역협력에서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현대제철은 정의선 당시 부회장이 직접 나서 철강설비 정비 부문에서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최고전문가를 사장으로 영입하고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해 환경오염 저감 설비로 개체하는 등 노력을 기울여왔다.
한국 근대화를 이끈 ‘산업의 쌀’ 철강을 공급한 도시, 포항과 광양도 포스코 제철소와 길게는 50여년 동안 애증의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대표적 대기오염 배출산업인 철강업을 주력산업으로 두고 있는 시민의 운명은 도시 발전과 지역경제를 위해 환경피해를 어느 만큼 감수해야 할지 선택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이 지방자치단체, 정치권, 언론과 함께 어떤 거버넌스 체계를 형성해 철강회사와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를 전제했을 때 포항과 광양은 포스코의 제철소 소재 도시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차이를 보여준다. 특히 포항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갈등은 반세기 축적해온 국내 최대 철강도시 위상이 한낱 신기루가 아닌지를 의심케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12월초 방영된 포항문화방송의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였다. 포항제철소가 유발해온 공해와 현장 직원들에게 발생한 루게릭병, 각종 암질환 등 직업병 실태는 환경부의 미공개 자료와 생생한 인터뷰에 담겨 큰 충격을 줬다.
파문이 확산되자 포스코의 한 노조가 방송보도를 문제 삼아 포스코에 지역협력 및 신규 투자 사업 중단, 주소지 주민등록 이전 등 엄포를 담은 성명을 발표하면서 ‘구사대’ 논란까지 촉발됐다. 급기야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협회가 엄정 대응을 천명하고 문화방송이 다큐멘터리를 전국에 방영하면서 사태는 ‘찻잔 속 태풍’ 이상이 됐다. 공교롭게도 다음날 단행된 포스코 인사에서 홍보 임원과 중간 간부는 모두 교체됐다. 하지만 이번 일은 홍보 라인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 최정우 포스코 회장과 경영진이 그동안 내세워온 ‘기업시민’의 중심 가치에 걸맞게 설비 투자 등 근본적 대책에 나서야 한다.
깊이 들여다보면 이번 방송 보도는 지역사회와 대기업 간 지층에 오랫동안 축적돼온 ‘응력’을 건드려 2017년 포항지열발전소가 유발한 지진처럼, 민감한 뇌관을 건드린 방아쇠나 다름 없다. 포항지역사회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포스코 포항제철소를 위해 내주면서 갈등과 지역협력의 양면을 거듭해왔다. 당연히 지역의 시민사회와 기업이 지자체를 매개로 그에 걸맞는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했지만 포항은 후발도시인 광양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제철소 폭발 등 오염사고가 발생할 경우 언론에 보도되는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규모로만 비교하더라도 차이는 분명하다.
이번 포항과 포스코의 사례는 국내 주요 오염 배출 산업 도시에도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대기업이 자본력을 바탕으로 지역의 유지들을 협력업체로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정치권과 언론, 사회단체를 통제하는 구시대적 카르텔은 지금 이땅에 창궐하는 코로나19를 방역하듯이 사라져야 한다. 대기 오염 물질 배출의 숙명을 진 제철산업이 전세계적 철강수요 감소와 환경 규제 앞에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포스코가 포항제철소의 이번 사례처럼 낡은 지역협력 기조를 유지한다면 기업시민은 결코 포스코의 평판이 될 수 없다.
*이 칼럼은 2020년 12월 게재된 <폴리뉴스>와의 협의 아래 전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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