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대의를 위해 함께 한다'는 화이부동의 메시지. (이미지=쳇gpt생성)
보수의 품격은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을 넘어서 태도·언어·책임감·공공성까지 갖춘 품성과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주의자라고 하면 투철한 준법정신과 국가관을 중심으로 권리보다도 의무, 자유보다도 책임을 우선하며 상황이나 진영 논리에 앞서 국가와 국민을 우선시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보수주의자의 삶을 살면서 사사로운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하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어떠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보는 '반구제기'(反求諸己)를 행동으로 실천하여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늘과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 '불원천 불우인'(不怨天 不尤人)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을 우리는 지도자라 부른다.
위대한 지도자로 칭송받는 사람들은 위기의 순간에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견리사의의 자세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자기희생을 앞세우는 리더 중 한 명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 중 보여준 리더십은 지금도 보수주의 리더가 본받아야 할 한 모범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게티즈버그 전투를 앞두고 마이드 장군에게 “이 작전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공로입니다. 그러나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실패한다면 장군은 대통령의 명령이었다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이 편지를 모두에게 공개하십시오”라고 짧은 편지를 보냈다. 링컨의 이 편지는 영광은 부하에게, 책임은 자신에게 돌리는 리더의 표본이 되는 자세로, 지금도 미국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THE BUCK STOPS HERE)’를 말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보수의 가치가 책임이라면 그 책임은 먼저 자기 자신을 향해야 한다. 보수의 리더가 되려면 자기반성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 “내 책임이다”라고 말할 줄 알았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자서전 ‘나의 반생’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게 비난의 돌을 던졌다. 아마 내가 그 돌을 맞아도 잘 견뎌낼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고 적을 정도로 책임감이 무엇인지 아는 지도자였다.
1915년 1차 세계 대전 당시 해군장관이던 처칠은 오스만제국을 조기에 무너뜨려 전쟁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갈리폴리 상륙작전'을 감행했지만 25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날 정도의 대참패로 끝났다. 처칠의 책임론이 들고 일어났지만, 당시 전투는 현장 지휘관의 판단 실수, 연합군의 협조 부족, 정보력 부재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였다. 하지만 처칠은 부하나 군 지휘관을 방패로 삼지 않고 “이 작전의 궁극적 책임은 나에게 있다. 결정을 내린 사람은 나였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나의 몫이다”며 눈앞에 둔 총리직을 포기하고 장관직에서 물러나 전선의 장교로 자원입대하며 백의종군한다. 그 결과 훗날 2차 대전 당시에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총리가 되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영국이 보수주의 국가의 중심국이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가끔 보수주의의 리더로 자신을 포장한 소인배의 리더십은 늘 외부에 적을 만든다. 언론 탓, 전임자 탓, 내부 배신자 탓, 국민 수준 탓을 하며 자신을 언제나 피해자 위치에 세운다. 항상 내편, 네편으로 분란을 일으켜 편 가르기로 조직을 망가트린다. 바로, 그 찰나가 보수의 리더십이 품격을 잃는 순간이다. 자기반성을 멈추고 남 탓을 시작할 때, 보수는 원칙을 잃고 진영 논리에 갇혀버린다.
지금 대한민국의 보수가 위험을 넘어 희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보수가 가져야 할 책임 의식은 사라지고 네 탓만 난무하고 있다. 누구 하나 반성하는 이가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모든 책임은 명령을 수행했던 군인들과 야당에게 돌리고 있고, 국민의힘은 계엄과 탄핵을 놓고 '정부를 뒷받침해야 할 여당이 책무를 소홀히 해서 이런 사태를 불렀다'는 타령만 하고 있다. 심지어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가 행한 국정농단의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전직 대표 한동훈, 현직 대표 장동혁과 108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국민의힘을 거쳐 개혁신당의 대표가 된 이준석 의원 등이 미래의 보수주의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우선 자기반성을 통한 새 출발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탄핵당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옹호하거나 부관참시(剖棺斬屍)한다고 리더십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들지 못하고 탄핵에 이르게 한 정치적 책임을 두 내외에게만 전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당시 각자가 책임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 무게를 져야만 장래 보수의 지도자로 거듭날 것이다. 대의정치의 기본이 무엇인가? 국민이 권한을 위임했으면 그 권한으로 권력을 감시해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야 했다. 하지만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고 세비만 축냈다면 그는 '선량'(選良)이 아니라 곡식이나 축내는 '서배'(鼠輩, 쥐떼)나 다를 바 없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배는 동이불화(同而不和)’라고 말했다. ‘화이부동’은 나와 이익이 맞지 않아도 대의를 위해서는 함께 한다는 뜻이고 ‘동이불화’ 나와 이익이 맞지 않으면 대의를 함께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내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합심하고 더 나아가 개혁신당과의 합당이나 연대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미망에 사로잡혀 아직도 윤석열 전 대통령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 전 대표의 ‘당원 게시판 사건’으로 이전투구를 자초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양측이 타협하지 못한다면 양측은 공멸할 것이다. 장동혁 대표는 지금 ‘윤어게인’ 세력이 원하는 희생양으로 ‘한동훈’을 제물로 바쳐, 한 줌도 안 되는 극우세력을 위해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건전한 보수세력과 척을 져 지방선거를 망친 대역죄인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길을 가고 있다.
한동훈 전 대표는 보수를 넘어선 강력한 팬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후보 결선에서 당 대표 선거 당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당원들의 표심을 얻은 실패를 뼈저리게 반추해야 한다. 그래서 ‘당원 게시판’ 사건에 대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충정에서 비롯된 해프닝이었다'고 사과하는 한편 대통령으로 모셨던 분에 대한 탄핵에 앞장선 데 대해 인간적, 정치적 소회를 밝히는 지혜도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지도자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민심을 이끌어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명분을 위해서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이는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한 대의명분을 위해 개인의 사사로운 이해타산 따위는 계산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져 합종연횡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한동훈 전 대표와 장동혁 현 대표는 보수의 미래라는 ‘대의’를 위해 ‘화이부동’해야 한다. 그 길 만이 두 사람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보수 전체가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