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1945년에 출간한 정치 풍자 소설 '동물농장'(Animal Farm)에서 우화적 형식을 빌려 무지하고 비판 의식이 부족한 대중은 쉽게 선동당해 독재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정치적인 경고를 했다. 비록 스탈린 독재 하의 소련을 모델로 했지만, 권력을 가진 집단과 민주주의를 원하는 집단의 이익이 공존하는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주고 있다.
‘매너 농장’이라는 평범한 농장에서 인간 주인 존스 씨의 착취와 학대에 시달리던 동물들은 늙은 돼지 ‘메이저 영감’의 연설에 영감을 받아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몰아내고 ‘동물농장’으로 개칭해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가치를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 초기에는 모두가 협력하며 희망찬 공동체를 만들어 가지만, 곧 지능이 높은 돼지들이 권력을 장악한다. 그들 중에서도 권모술수에 능한 나폴레온이 돼지무리들 속의 경쟁자를 제거하며 새로운 독재자로 등장한다.
그는 개들을 사병처럼 길러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선전가 ‘스퀼러’를 앞세워 거짓 정보와 왜곡된 역사를 동물들에게 주입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 불평등을 제도화한 위선적인 권력으로 교묘하게 바뀐다. 결국 돼지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술을 마시고, 인간과 거래하며, 이익을 위해 손잡는다. 농장 동물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돼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이는 혁명으로 세운 이상 사회가 어떻게 다시 부패하고 착취 구조로 회귀하는지를 보여주며 권력의 부패와 절대 권력의 위험성을 알린다.
국민들은 지난 3년간 윤석열 정부의 불통과 친위세력 만들기, 측근과 김건희 씨를 둘러싼 의혹들에 대해서는 관대한 처분을, 정적에 대해서는 과할 정도의 무자비한 공격을 봤다. 과연 대한민국의 5천만을 대표하는 대통령인지, 민의를 대변하는 대통령이 맞는지 헷갈린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대통령과 야당은 백성은 안중에도 없이 서로가 가진 무기를 최대한 사용해 헤게모니를 두고 치킨게임을 벌이다가 계엄선포라는 자충수로 자멸하게 된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 지, 100일도 채 되기 전에 윤석열 정권이 보여줬던 모든 것들이 데쟈뷰되고 있다. 민주당 대표 선거에 대통령의 개입, 죄질이 불량한 정치사범의 사면과 복권, 막말과 비리 전과자 및 보은을 위한 요직 인사,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불일치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당 대표를 쫓아내고 선거에 개입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명백히 봤을 것이다. 그러했는데도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 박찬대 의원을 지원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고, 맹신자들의 헌신에도 불구하고 정청래가 당선되어 통치력에 자상을 냈다. 이는 지난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원희룡 전 장관을 밀었지만, 한동훈 전 장관에게 지면서 정무 감각을 잃고 계엄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된 전철을 망각한 것이다.
대통령의 기본적인 역할은 5천만 국민을 위해서 대내외적으로 안위와 경제, 그리고 자유와 민주, 평화를 위해 24시간 365일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인데 여당 내의 권력 싸움에 몰입하는 소아적 정치를 하고 있다. 소아 정치의 단점은 잘못된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작은 싸움과 이익에 몰입하다 보면 국민통합과 국제정세에서 뒤처지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의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라고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작 본인의 한 시간은 민주당 당원의 시간으로 한정하는 어불성설의 행태를 자행했다.
지금 당장 대통령은 여당의 당무에서 손을 떼고 5천만 국민들의 ‘먹사니즘’과 미·중 패권시대에 어떻게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에 전념하길 바란다. 특히 ‘보여주기식 쇼’가 아니라, ‘입에 발린 듣기 좋은 말’로만이 아니라, ‘곳간 틀어 돈 퍼주기’가 아닌 ‘필요할 때 병풍 세우는 재벌 정책’이 아닌, 내 편만의 정책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강성노조들이 요구하는 ‘노란봉투법’ 등에 대해 과감하게 거부해서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고 해외 공장을 국내로 이전하는 ‘리쇼어링’에 대해 특혜를 주는 정책을 시행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에 몰두하는 것이 책무다.
안타깝게도 벌써 이재명 정부를 탄생시킨 민주당의 앞날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다. 동물농장의 돼지들은 혁명에 성공하자 모든 권력을 독식하기 위해 정적 제거에 몰두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여당 대표에 당선되자마자, 제1야당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대화를 단절시켰다. 상대 당 대표를 예방은 물론 악수조차 하지 못할 사람으로 규정했다. 나아가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규정해 정당 해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정청래 씨는 집권 여당의 대표가 아닌, 아직도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다고 믿었던 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함을 자인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힘을 지지하고 있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오만불손한 행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
정 대표의 근시안적인 행동은 오직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민주당 당원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옹졸하기 짝이 없는 행태라고 본다.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도록 뒷받침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민주 당원만 보고 가겠다면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받는 정당 보조금은 반납하고 민주 당원들의 당비로만 당을 운영하길 바란다. 지금 정 대표가 하는 행동에 딱 어울리는 선택은 ‘민주당과 민주 당원들이 주최하는 행사에만 참석하고, 범국가적인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정중히 충고하고 싶다.
인간의 횡포를 몰아내고 민주적인 사회,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동물들의 꿈이 현실에서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때는 동지였던 돼지들이 새로운 권력에 맛을 들이면서 인간의 시대나 다를 바 없는 돼지들의 시대에 사는 동물들이 지금 다시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단지 윤석열에서 이재명으로 이름만 바뀐 세상에 살고 있다는 허망함에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소환해 보는 현실은 참담하다. / 김건우 정치에디터(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