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만의 간호법 통과...국민 영향은 'PA' 보다 '돌봄'

의사파업에 PA 부각됐으나 방문간호 길 터
초고령사회·감염병 대유행에 환자안전 보장
‘태움’ 등 간호사 현실 개선 제도적 장치 마련
보수여당 의료 위기 직면하자 ‘뒷북찬성’빈축

뉴스포레 임재현 기자 승인 2024.08.28 21:46 | 최종 수정 2024.08.29 06:04 의견 0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28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자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간협>

간호법 제정안(간호법)과 전세사기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 구하라법(민법 개정안) 등 28개 법안이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야와 언론이 일제히 지난 5월 말 개원한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된 첫 민생 법안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입법의 압권은 단연 19년만에 간호사들의 눈물과 환희 속에 통과된 간호법.

간호법은 지난해 21대 국회 막바지에서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 ‘직회부’를 통해 처리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이른바 재의요구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안 발표 이후 의사들의 파업으로 의료 공백 사태가 반년 넘게 이어지자 수술실 등 의사들의 업무를 메울 간호사들의 역할이 절실한 현실은 상황을 바꿔놨다. 여기다 코로나19 재확산에다 보건의료노조 총파업 예고로 의료 공백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자 여야는 간호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쟁점으로 알려진 ‘PA’ 간호사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최종 통과하면서 진료보조(PA) 간호사 의료행위의 법적 근거가 핵심인 것으로 부각되고 있다.

PA간호사는 진료 현장에서 '전담 간호사'나 '임상전담간호사(CPN)'로도 불린다. 현재 전국에서 1만 명 가량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주로 전공의들이 부족한 기피과에서 의사 대신 봉합, 절개, 처방 등을 한다.

상당 수 병원에서 PA 간호사들이 의사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현실은 의사 부족이라는 국내 의료의 고질적 병폐가 있지만 경영 수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병원업계의 이해관계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PA간호사의 현장 투입과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으나 현행법엔 PA간호사의 법적 근거가 없다. 현행 의료법상 의사와 간호사는 있지만 PA간호사는 없다.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의사 면허가 없는 사람이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의료사고가 나도 의료법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의 역할을 명문화해 의료 행위를 법적으로 보호하자는 게 법안 제정 취지다.

▲의사협회의 반발 명분과 속사정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이 제정되면 PA간호사 합법화가 상징하듯이 현행 의료 체계가 무너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의료계 종사자 관련 규정을 하나의 의료법으로 묶어뒀는데, 간호법이 제정되면 다른 의료 직역도 이탈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의협 관계자는 “간호법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한의사법, 물리치료사법 등도 연이어 생길 것”이라며 “의료법이 제 역할과 기능을 잃을 수 있다”고 비판해왔다.

의협의 주장을 뒤집어보면 간호사를 필두로 관련 법이 추진될 경우 의사들의 직역과 이해관계가 침범당할 것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PA 간호사의 업무 영역인 병원 내부 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의료기관 밖에서의 업무영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국민 건강을 위협할 우려가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의사 파업 종료 후에는 ‘돌봄’에 주목

의협의 우려와 반발이 병원의 안팎을 넘나드는데는 이번 간호법 통과 이후 확대될 간호사들의 방문간호, 이른바 돌봄이 가져올 의료계의 현실 변화에 대한 업권 수호의 위기감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도 초고령사회를 맞아 노인 인구가 폭증하고 병원 등 의료기관 밖 돌봄 수요가 증가하는데도 현행 의료법은 이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영화에서 보듯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은 방문간호사 제도가 법제화돼 거동이 불편해 병원 내원이 어려운 노인들이 가정에서 의사는 물론 간호사들의 돌봄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현재 의료법 체계에서는 주민센터 같은 비의료기관에 배치된 간호사들이 혈압 측정 등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다. 가능한 활동은 건강관리, 상담 등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간호법에는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이라고 돼 있다. ‘간호법=부모돌봄법’이라고 간호협회가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현행 의료법은 의료기관 뿐 아니라 지역사회 등에서 다양화, 전문화되고 있는 간호 업무를 체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증가하는 노인질환을 예방하고 지원을 강화하려면 맞춤형 간호간병 돌봄인력 양성이 필요하며 간호인력을 적극 활용하면 사회적 비용에 비해 훨씬 큰 사회적 편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법은 초고령 사회 진입, 만성질환 증가에 따른 간호인력 수요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에 대비해 결국 국민의 건강을 위한 법”이라고 강조해왔다.

▲'태움'에 가려진 ‘백의의 천사’ 위상 제고

이번에 통과된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범위 뿐만 아니라 면허와 자격, 권리와 책무, 수급과 교육, 장기근속 등을 위한 간호정책 개선에 관련한 사항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시달려온 간호업계의 고질적 딜레마를 제도적으로 개선할 장치로서 기대되는 점이 크다.

앞서 복지부는 지난 2018년 3월 대형병원 간호사가 잇따라 숨진 사건을 계기로 간호사 처우개선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근거할 간호법 등 제도나 법적 장치가 없어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권고 수준에 그치는 등 실제 효과는 없었다.

간협 측은 “복지부가 야간간호료 수가의 70% 이상을 교대근무 간호사의 야간근무에 따른 보상 강화를 위한 인건비로 사용해야 한다고 했지만 강제조항이 아니라 흐지부지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야간간호료는 간호사가 야간(밤 10시~이튿날 오전 6시)에 근무하면서 일반병동 입원환자를 간호하는 경우 산정된다.

하지만 이번 간호법 통과로 간호사의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 등이 제도화되고 이를 지도, 단속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다.

탁영란 대한간호협회장은 “그동안 간호사들은 앞에서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현실은 젊은 간호사들이 ‘태움’의 질곡을 이기지 못해 의료 현장을 떠나 간호사 자격은 ‘장롱 면허’로 전락해왔다”면서 “이번 간호법 제정은 간호의 위상이 바로 서는 것은 물론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이 개선되는 첫발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간호협회 환영 성명 발표

대한간호협회는 간호법이 통과되자 즉각 성명을 냈다.

간협은 “지난 17대, 20대, 21대, 22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여간 국회 앞에서 염원을 외치고 호소해 간절히 바라던 간호법 제정안이 드디어 오늘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면서 “2005년 국회 입법으로 시도된 후 무려 19년 만에 이뤄진 매우 뜻깊고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간호 돌봄 체계 구축과 보편적 건강 보장을 실현해 나가는 길이 열리게 됐고, 우수한 간호인력 양성과 적정 배치, 숙련된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국가의 책무가 법제화돼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토대가 마련됐다”며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의료 개혁에 적극 동참하고, 사회적 돌봄의 공적 가치에 대한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모든 국민께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의 빛 바랜 입법 동참

간호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재석 290명 가운데 찬성 283표, 반대 2표, 기권 5표로 가결돼다. 개혁신당 이주영·이준석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고, 국민의힘 고동진·김민전·김재섭·인요한·한지아 의원은 기권했다.

앞서 지난 대선에서 간호법 제정은 윤석열·이재명 후보 등 여야 모두의 선거 공약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 힘과 용산 대통령실은 모두 간호법의 국회 통과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며 결국 여당 주도의 법안 본회의 통과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권을 행사해 간호사 등 의료 개혁을 원하는 민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보건의료노조의 한 관계자는 28일 “정부는 반년을 이어온 의사파업에다 코로나 사태 위기가 재고조되고 의료노조의 파업까지 예고되면서 의료 위기를 자초했다는 국민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했다. 덧붙여 “특히 최대 이권단체인 의사협회를 두둔하는 듯한 행태를 더 이상 고수하기 어려운 한계에 부딪히자 야당이 주도한 간호법 통과에 마지못해 등 떠밀렸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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